“진짜 중요한 건 삶이 우리에게 뭘 기대하느냐는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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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호 40면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어느 작가가 지적했듯이,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는 위대한 계시란 매우 드문 것이어서 기껏해야 한두 번일 수 있다. 마치 그 계시처럼 이 책은 나를 찾아와 머리통을 아주 세차게 내갈겼다. “살아가야 할 이유(why)가 있는 사람은 어떠한 방식(how)에도 견딜 수 있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2>『죽음의 수용소에서』와 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1905~1997)의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는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네 곳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적어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수용소의 끔찍한 참상을 고발하는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굽힐 줄 모르는 낙관주의와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삶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주제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강제노역을 하던 어느 날 한 수감자가 기막힌 일몰 광경을 바라보며 말한다. “세상은 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 프랭클은 이렇게 덧붙인다. “모든 것을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 그토록 오랜 세월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던 것이다.”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프랭클은 가족과 재산, 심지어 숨겨뒀던 원고까지 빼앗긴 채 벌거숭이 몸뚱이만 남는다. 그러나 그는 악과 고통과 죽음으로 둘러싸인 수용소 생활을 전하면서 내면에 남아 있는 선과 고귀함과 삶에 대한 긍정적 가치관을 일깨운다.

“자기에게 남은 마지막 빵 조각까지 다 주어버리던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만족할 만한 증거를 제시해 준다.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을 수는 있으나 단 한 가지 빼앗을 수 없는, 그것은 인간의 마지막 자유, 즉 어떠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몹시 춥고 매서운 바람이 후려치던 새벽, 그는 찢어진 신발 때문에 발이 너무 아파 울면서 작업장까지 몇 킬로미터를 절름거리며 걸어갔다. 그때 억지로라도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자신이 강의실 강단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고, 스피노자의 말을 떠올렸다. “고통이라는 감정은 분명하고 정확하게 그 실체를 파악하고 나면 더 이상 고통을 주지 못한다.”

그는 인간이 고통과 불행을 겪으면 겪을수록, 그것의 가치는 헛되지 않으며, 삶의 의미는 그만큼 더 깊어지는 것이라는 낙관적 믿음을 보여준다.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의 삶에서 참된 기회들은 지나가버렸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은 한 번의 기회와 한 번의 도전이 더 있었다. 그런 고난을 극복해 냄으로써 자신의 삶을 내면의 승리로 변화시킬 수도 있었고, 아니면 수감자 대다수가 그랬듯이 도전을 무시하고 그저 식물처럼 살아갈 수도 있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수감자는 파멸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면서 정신력까지도 함께 잃어버렸던 것이다. “슬프게도 자신의 삶에서 더 이상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사람은 목표도 목적도 없었다. 그러니 계속 살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 사람은 곧 죽었다.”

프랭클은 정말로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배워야 했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했다. 우리는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기를 멈추고, 대신 자신이 삶으로부터 끊임없이 질문을 받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대답은 말과 사고가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처신이어야 했다.”

그렇다. 삶의 의미란 고통 받고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두 팔 벌려 껴안는 것이다. “헤쳐나가야 할 고통이 얼마나 많은가!” 고통에 등을 돌리지 않고 하나의 과업으로 받아들이면, 그 속에 성취할 기회가 숨겨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제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알게 됐으니 어떠한 ‘방식’에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이란 행복과 마찬가지로 추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훌륭하고 보람 있는 일에 헌신함으로써, 혹은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얻어지는 의도되지 않은 부산물일 뿐이다.”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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