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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유 9.6% 이란서 수입, 도입선 바꾸기 힘든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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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0-0.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에서 통과된 한 법안의 표결 결과다. 민주당에서든 공화당에서든 반대가 없는 만장일치였다. 법안의 명칭은 ‘국방수권법 수정안(The amendment to the National Defence Authorization Act)’이다. 하지만 이 법안 때문에 한국 외교부와 경제계에 비상이 걸렸다. 법안은 ‘이란중앙은행(CBI)과 거래하는 모든 외국 은행에 대해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중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목표다. 민주당의 로버트 메넨데즈(뉴저지)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마크 커크(일리노이) 상원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상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을 봉쇄하기 위해 국방부가 요구한 테러리스트 방어용 6620억 달러의 국방예산을 국방수권법 수정안과 함께 처리했다. 법안 통과 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해리 리드(네바다) 의원은 “이란은 테러집단을 지원하고, 미군의 적을 무장시키며, 핵 무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며 “미국과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이란의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달러 거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 결제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이 법안은 이란중앙은행과의 거래를 원천 봉쇄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일부 은행이 이란중앙은행에 원화계좌를 개설해 원유 수입 대금 등을 결제하고 있으나 이 법안대로라면 이마저 불가능해진다. 이란과의 모든 수출입 거래가 중단될 수밖에 없다.

 당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 유가 상승을 이유로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과 데이비드 코언 재무부 테러·금융 담당 차관보는 “ 유가가 인상될 위험이 있다”며 법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내년 대선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 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이란 시위대가 테헤란 주재 영국대사관을 습격한 데 이어 이란군이 자국 내에 추락한 미국의 무인정찰기 RQ-170을 전격 공개하는 등 이란의 도발이 잇따르면서 여론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8일 이란의 핵 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동맹국들과 공조할 것이며, 이란의 핵 개발 시도를 차단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 하원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3분의 2 이상 의원들의 지지 서명을 받고 곧 통과될 예정이어서, 상원과 하원은 다음 주 중 통합 법안을 최종 처리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 확실하다고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의회가 3분의 2 이상 찬성해 통과시키고,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법안은 180일간의 유예를 거쳐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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