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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종수의 세상읽기

헝그리세대 vs 앵그리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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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종수
논설위원·경제연구소 부소장

지난달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취업자 수가 늘어난 것을 두고 ‘고용대박’이라고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고용이 늘어난 것이 얼마나 반가웠으면 그랬을까마는 여전히 일자리를 못 구해 헤매는 청년백수들에게는 참으로 아픈 소리가 아닐 없다. 아픈 청춘을 보듬어 주진 못할망정 어디가 아픈 줄도 모르고 상처를 들쑤셔 놓았으니 말이다.

 10월 ‘고용대박’의 진실은 20~30대 취업자수는 거의 늘지 않은 반면 50~60대 일자리만 크게 늘어난 결과를 뭉뚱그려 합쳐놓는 바람에 나타난 통계적 착시였을 뿐이다. 10월 20대(20~29세) 취업자수는 363만 명으로 1년 전과 똑같았던 반면 50대(50~59세) 취업자는 525만 명으로 1년 사이 무려 30만 명이 늘었다. 실업률 통계를 보면 세대 간 고용 격차가 더 확연히 드러난다. 20대 실업률은 그동안 많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전체 평균실업률 2.9%를 훨씬 넘는 6.7%에 머물러 있는 반면, 50대는 1.8%로 사실상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거의 다 취업했다고 보면 된다.

 이런 현상은 사실 최근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2006년 이후 20대 취업자 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는 반면 50대 취업자 수는 계속 급증세를 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20대나 50대 모두 고용률이 위기 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50대는 곧바로 고용률이 위기 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20대는 그 이전부터 이어진 하락세를 되돌리지 못했다. 여기에는 인구 구조 변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연령별로 취업기회가 다르다는 현실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50대는 정년연장과 재취업을 통해 기를 쓰고 일자리를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청춘들이 아프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만 나오면 모든 게 다 풀릴 줄 알았는데 사회의 첫걸음을 실업자로 내딛게 됐으니 왜 아프지 않겠는가.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1년간 130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청춘들이 정말 많이 아픈 모양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도 최근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이 책을 꼽았다. 정치권도 이젠 아픈 청춘들을 제쳐놓고는 내년 선거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취업을 했건 못했건 이들도 모두 한 표를 가졌고, 최근 선거 경향을 보면 이들의 표심이 판세를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그런데 요즘 청춘들은 아프기만 한 게 아니라 화까지 났다. 이른바 앵그리세대(angry generation)다. 취업에 좌절하고, 미래마저 보이지 않는다는 암울한 현실이 이들의 아픔을 분노로 바꿔 놓았다. 분노는 적절히 표출되지 않으면 폭발한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을 통해 MB를 욕하고, 기성세대를 원망하며, 정치권을 조롱하는 것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안철수와 박경철의 ‘청춘 콘서트’가 위안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이들의 분노까지 잠재우진 못했다. 급기야 인터넷과 SNS에 몰려다니며 무차별적으로 공격의 대상을 찾는다. 그것이 MB가 되었건, 개념 없는 연예인이 되었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찬성하는 ‘매국노’가 되었건 상관없다. 여기다 정치개그 ‘나꼼수’와 몇몇 선동적인 작가·연예인의 트위터 몇 줄이 더해지면 이들의 분노는 여의도 광장과 광화문 네거리를 뒤덮는 시위로 돌변한다.

 이들의 대척점에 인터넷에 서툴고 SNS를 쓸 줄도 모르는 후줄근한 50대가 있다. 배고픈 시절 태어나 먹고살기 위해 죽기살기로 앞만 보며 달려온 헝그리세대(hungry generation)다. 청춘들이 보기엔 ‘소통능력’이 떨어지는 ‘꼰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들이야 말로 자식 키우고 부모를 봉양하며 정말 ‘꼼수’를 모르고 죽어라 일만 해온 세대다. 위기란 위기는 모조리 겪어본 이들은 새로운 위기에도 결코 굴하는 법이 없다. 이보다 더한 고생도 다 견뎠다는 경험이 은퇴시점을 맞은 이들을 또다시 일터로 내보낸다. 위기가 닥치면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험한 일 힘든 일도 마다 않은 결과가 50대의 경이적인 취업률로 나타난 것이다.

 헝그리세대는 이제 앵그리세대 걱정에 날이 샌다. 대학공부까지 시켜줬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했으니 미안하다. 자식들로부터 부양받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저 홧김에 엇나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돌이켜보면 이들이 20대일 적엔 누구에게 일자리를 내놓으라고 화를 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 시절에도 청춘은 아팠겠지만 아플 틈도 없이 살아온 세월이었다. 쭈뼛쭈뼛 민주화 시위에 기웃거린 적은 있지만 내 인생의 실패를 남의 탓이라고 돌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배고픈 경험 없이 자란 자식세대가 고생하고 아파하는 것은 어떡하든 피하게 해주고 싶다. 비록 그걸 제대로 표현할 ‘소통 능력’은 떨어질지라도 말이다.

 화를 무작정 참기보다는 적절히 표출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는 좋다. 그러나 그런다고 밥이 생기고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꼼수와 청춘콘서트와 트위터가 일시적이나마 위안이 되고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인생의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일자리를 못 구했다는 대졸 실업자 수가 일손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는 중소기업의 인력수요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은 우리 청춘들이 고민의 해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헝그리세대가 앵그리세대의 일자리를 척하니 만들어 주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화를 풀자.

김종수 논설위원·경제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