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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드물다는 작품 좋고 사람 좋은 … ” 김애란 축사에 웃음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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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유머 넘치는 축사와 수상소감 덕에 시상식은 지루하지 않았다. 시상식이 끝나고 영광의 얼굴이 한 자리에 섰다. 왼쪽부터 미당문학상 수상자 이영광 시인, 황순원문학상 수상자 윤성희 작가,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자 신상조씨,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자 심재천씨, 중앙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 백정승씨. [김태성 기자]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제11회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 제12회 중앙신인문학상, 그리고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통합 시상식이 2일 오후 6시 서울 서소문 오펠리스홀에서 열렸다. 수상자만 5명에 달하는 이 축제에 문인과 수상자 가족 등 4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한국 문단의 중견·신예가 한자리에 모여 축하와 격려를 나누는 문학판 큰 잔치였다.

◆영광의 주인공들=미당문학상은 이영광(46) 시인이 받았다. 한해 동안 발표된 시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 상을 주는 것이라 이 시인은 ‘저녁은 모든 희망으로’ 단 한 편으로 상금 3000만원을 받았다. 역시 한해 동안 발표된 가장 뛰어난 단면에 주는 황순원문학상은 소설가 윤성희(37)씨 ‘부메랑’으로 수상했다. 상금은 5000만원이다.

 중앙신인문학상은 백정승(40)씨가 단편 ‘빈집’으로 소설 부문을, 신상조(47)씨가 김숨의 소설 분석으로 평론 부분상을 받았다. 상금은 각각 1000만원, 500만원이다.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백정승씨는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시 귀국했다. 고료 1억원 중앙장편문학상의 영광은 ‘나의 토익 만점 수기’를 쓴 심재천씨에게 돌아갔다.

 ◆재기와 유머 넘치는 축사=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미당·황순원문학상 수상자가 지인에게 축하의 말을 듣는 ‘특별한 축사’다. 미당문학상을 받은 이영광 시인을 위해 은사인 오탁번 시인(68·고려대 명예교수)이 축사를 맡았다.

 “제가 학교 선생으로선 보다 보다 이런 불량 학생을 못 봤죠. 그러면서도 늘 제가 이영광 시인에 대해 믿는 것은, 여러분도 이 시인의 몸뚱이를 봤겠지만 웬만큼 굶어도 굶어 죽지 않고, 웬만큼 폭행 당해도 살아남을 뚝심입니다. 시대의 매서운 바람, 죽고 싶은 소외감에도 결코 꺾이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아닌가 합니다.“

 제 1회 상을 받은 고 박완서 선생 이후 10년 만에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여성 작가가 된 윤성희씨는 축사도 문단의 기대 작가로 꼽히는 후배 김애란(31)씨에게 맡겼다. 김씨는 축사 앞부분에선 “윤씨가 새로 산 청바지의 파란 물을 손바닥에 들인 채 수다를 떨 만큼 덜렁거린다”며 단점을 지적하는가 싶더니 뒷부분에선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세상에 그 드물다는, 그 100명 중 한 명 나올까 말까 한다는, ‘작품도 좋고 사람도 좋은’ 작가가 정말로 존재한다는 걸 저는 선배를 보고 알았습니다.”

 각 부문 심사를 맡은 문단 대선배들의 훈훈한 축하도 이어졌다.

미당문학상 심사위원을 대표해 황현산(66) 고려대 교수가 축사를 맡았고, 황순원문학상 심사위원 대표로는 소설가 최윤(58)씨가 나섰다. 이제 막 등단한 신인을 위해 김형경(51) 작가가 축하와 격려의 말을 전했고, 중앙장편문학상 심사위원을 대표해 문단의 원로 이제하(74) 작가가 축사를 건넸다.

 ◆각계 축하객=시상식은 한국문단의 대축제였다. 주요 참가자는 시인 황동규·김기택·박주택·최정례·박형준·안상학·이원·이민하·김행숙·안현미씨, 소설가 이승우·방현석·김연수·하성란·김경욱·박형서·김미월·이신조·김태용 김재영·김성중·고은규·오수완씨, 문학평론가 황현산·정홍수·윤재웅·류보선·이광호·황종연·권혁웅·심진경·조재룡·강유정·손정수·강계숙·백지연·이수형·허윤진씨 등이다. 김교준 중앙일보 편집인, 웅진씽크빅 단행본부문 이수미 본부장도 시상자로 자리를 빛냈다.

신준봉·이경희 기자

◆이영광-황순원문학상 수상 소감

 “시를 쓰면서 넋을 잃어버릴 때가 가장 좋았어요. 정신을 잃는 것은 시의 윤리이고, 정신을 차리는 건 삶의 윤리일 텐데 그 둘이 하나가 되는 어떤 순간에 시의 새로운 말이 태어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습니다. 저라는 장애인이 시의 힘을 빌려서, 바라건대 어떤 깨끗한 더러움의 상태를 목표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애란-황순원문학상 축사

 “제가 꿈꿔왔던 소설가의 모습은 어딘가 우수에 차 있고, 스스로에게 엄격하며,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단단한 침묵을 품고 사는, 그런 거였습니다. 하지만 선배는 문단의 공익근무요원이라 불릴 만큼 타인에게 관대할뿐더러 자신에게도 관대하여 술자리서 과음과 폭음을 일삼고, 입으로는 부끄럼이 많다 말하면서도 목소리가 크고, 여러 사람 앞에 서는 걸 불안해 하지만 어느 때는 학급 반장처럼 사람들을 통솔하며 복잡한 일을 척척 해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김형경-중앙신인문학상 축사

 “제 스승님인 황순원 선생님께 들은 말씀 한마디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일단 발표된 문학 작품은 독립된 생명체로서 자기 길을 갈 것이다. 작품에 대해 누가 뭐라든 왈가왈부하지 말고, 작품이 혼자 살아가도록 튼튼한 생명력을 부여해서 세상에 내보내라.’”

◆백정승-중앙신인문학상 소설부문 수상 소감

 “지금까지는 입국신고서의 직업란에 ‘학생’이라고 꾸준히 썼었는데, 이번에는 ‘작가’라고 써보았습니다. 조그만 글씨로 재빨리 써넣었습니다. 이제 저는 직업을 하나 갖게 됐습니다. 그것도 한번 얻으면 영원히 잃을 염려가 없는 영구적인 직업을 단번에 갖게 된 것입니다. 실업자가 많은 요즘에 이런 직업을 갖게 된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심재천-중앙장편문학상 수상 소감

 “상을 받고 나니 사람들이 갑자기 친절해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대로인데 상 하나 받았다고…. 기분이 이상했어요. 저는 상을 받기 이전부터 저에게 친절했던 사람들에게 먼저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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