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35세의 빅리거, 크리스 도넬스

중앙일보

입력

지난 7월 20일, 다저스는 마이너리그에서 올해 35살 된 노장 선수 한명을 불러 올렸다.

크리스 도넬스(Chris Donnels)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는 그 선수는 승급되기 이전까지 다져스 산하의 트리플 A 팀인 앨버커키 듀크스에서 3할3푼6리의 타율에 26개의 홈런과 80개의 타점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이런 그의 성적은 마이너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만큼 두드러 지는 것이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감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혜성같이 갑자기 나타난 선수가 이런 엄청난 성적을 올리고 있다는 부분도 그러려니와 무려 35살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까지 어떤 리그의 성적표에서도 '크리스 도넬스'라는 이름을 찾기 힘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시애틀 매리너스가 장차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하게 될 켄 그리피 주니어(Ken Griffey Jr.)를 전체 종합 1순위로 지명한 87년 아마추어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뉴욕 메츠는 로빈 벤추라(Robin Ventura)와 함께 당시 대학 리그 최고의 3루수이자 미국 국가대표 팀 주전 3루수로 활약하던 한 선수를 지명하게 된다.

공-수 양면에 걸쳐서 대졸 3루수들 가운데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기량을 갖추고 있던 이 특급 유망주의 이름은 바로 크리스 도넬스였다. 그리고 이 선수는 바로 지난 7월 20일, 35살의 나이에 메이저리그 타석에 섰던 그 크리스 도넬스와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뉴욕 메츠의 마이너리그 시스템은 유난히 실패한 유망주를 많이 배출하는 곳으로 예나 지금이나 유명한 곳이다.

한때 메이저리그 전체를 흥분케 했던 폴 윌슨(Paul Wilson), 제이슨 이스링하우젠(Jason Isringhausen), 빌 펄시퍼(Bill Pulsipher)의 영건 3인방은 이러한 메츠 마이너리그 시스템이 낳은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구단의 조급함과 세심치 못한 관리로 인해서 망가진 유망주의 대명사 처럼 되어버린 선수들이다.

팀의 제 2의 중흥기를 맞고 있는 90년대 중반 이후에도 메츠의 마이너리그 시스템은 팀내 최고 유망주들인 제이 패이튼(Jay Payton), 알렉스 에스코바(Alex Escobar) 등을 부상 병동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나마 팀에 쌓여가던 많은 유망주들을 트레이드 등을 통해서 다른 팀 유니폼을 입게 만들어 놓는 등, 전혀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한때 팀의 최고 투수 유망주였던 옥타비오 도텔(Octavio Dotel)이 마이너리그 전체에서도 가장 추운 곳에 위치한 빙햄턴 메츠(더블 A)로 보내져서 거의 망가져 버릴 뻔 했던 사실은 이런 메츠 마이너리그 시스템의 형편없는 선수 관리 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리고 많은 기대를 받고 팀내 1순위로 입단한 특급 기대주였던 크리스 도넬스 역시 이런 메츠 마이너리그 시스템이 낳은 실패한 유망주 중 한명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메츠에 지명된 것이 크리스 도넬스의 첫 번째 불운이었다면, 두 번째 불운은 부상으로부터 찾아왔다. 잦은 부상과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한 과도한 욕심으로 인한 재활의 실패는 일반적으로 1~2년이면 메이저리그로 승급되는 다른 1라운드 지명자들과 달리 도넬스를 무려 입단 후 4년간이나 마이너리그에 머물게 만들고 말았고, 겨우 기회를 잡아 메이저리그로 승급된 91년도에 도넬스에게 맡겨진 것은 대타 요원이었다.

그토록 기대했던 메이저리그 첫 시즌인 91년도에 도넬스가 기록한 성적은 주로 대타로 37게임에 출장하면서 남긴 2할2푼5리의 타율과 5개의 타점이었다. 홈런은 하나도 없었으며 장타율이 출루율 보다 낮을 정도로 도넬스의 데뷔 성적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역시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주로 대타로 출장하면서 1할7푼4리의 타율을 기록한 후, 도넬스는 신생팀 드래프트로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하지만 플로리다 말린스에서도 도넬스의 자리는 없었다.

말린스는 도넬스를 지명하자마자 다시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 시켜 버렸고, 도넬스는 휴스턴에 가서야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하지만 도넬스에게 대학 시절의 기량을 바라기에는 이미 도넬스의 나이는 유망주라고 하기에는 힘든 30줄을 바라보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휴스턴에서도 도넬스는 대타 요원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2년이 지난 95년, 도넬스는 이번에는 리그를 바꿔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도넬스의 나이는 이미 30세. 메이저리그의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나이도 너무 많았고, 기량도 이미 예전의 기량이 아니었다.

그래도 도넬스에게 한가지 위안이 있다면, 데뷔 시절만큼 화려한 은퇴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도넬스에게 마지막 시즌이 되었던 1995년 10월 1일, 자신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타석에서 도넬스는 홈런을 치면서 자신의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을 친 37명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도넬스의 이름은 간간히 저팬 리그(Japan League) 등에서 찾아볼 수 있었지만, 87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4순위로 지명된 특급 유망주 크리스 도넬스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2000년 7월 20일, 크리스 도넬스는 팀의 에이스인 케빈 브라운의 타석에 대타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굴곡 많았던 자신의 메이저리그 복귀 타석에서 1타점 적시 2루타를 날리면서 다져스 팬들에게 '크리스 도넬스'라는 이름을 다시금 기억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비록 그 도넬스가 13년전 아마추어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지명된 국가대표 주전 3루수인 도넬스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도넬스는 메이저리그를 떠나 있던 5년 동안 자신의 실패한 메이저리그 인생이 잊혀지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마이너리그에는 무려 150여개가 넘는 팀들이 있으며, 그 중에서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루는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렇게 꿈을 이루었더라도 애초에 자신이 원치 않았던 길을 걷는 선수도 많고, 인디펜던트 리그에는 마이너리그에서 조차도 뛸 수 없는, 하지만 야구를 하고 싶은 선수들이 수도 없이 많다. 비록 형편없는 플레이를 보여 준다고 할지라도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우리가 보고 있는 선수들은 위대한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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