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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여자란 왜’] 그 남자 만날까요? 점집 찾는 진짜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임경선 칼럼니스트
『어떤 날 그녀들이』 저자

지난달 이 칼럼의 자매 격인 ‘조현의 여자는 왜’ 에서 ‘점(占) 좋아하는 여자들’ 이야기를 읽었다. 맞다. 나도 한때는 꽤 솔깃해했다. 그러다가 이젠 관심을 끊었다. 이유는 나의 ‘절친’이 광적인 점집 매니어가 됐기 때문이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그녀는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선생님’한테 물어보니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며 운명론을 논했다. 처음엔 함께 끄덕댔지만 상담 범위가 남자문제와 건강문제까지 아우르며 “어떤 나쁜 기운이 방해공작을 펼치는 것”이라 하니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었다.

 나는 점집에 가는 이유가 미래가 궁금하거나, 희망적인 진단을 받고 싶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고 싶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핵심은 “이건 당신 탓이 아니야”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상황이 안 좋은 것을 괴로워하기보다 ‘내가’ 이 상황을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자각하는 것에 훨씬 더 괴로워한다. 그래서 “조상님 중 누군가가 방해하고 있거나, 전생의 업보가 아직 짓누르고 있다” 등의 ‘판타지’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물론 퍽퍽한 삶에는 적지 않게 판타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기책임을 회피하고 모든 것을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들로 책임 전가하는 것은 여자들을 나약하게 만드는 처사다. 게다가 아무리 억울해 뵈는 상황이 닥쳐도 구체적으로 짚고 넘어가면 나에게도 분명히 책임은 있다. 조상신이든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나약하나마 자신의 머리로 해답을 내리는 사람에게 더 큰 자비를 내려주시지 않을까. 올해의 마지막 달, 스스로를 ‘얄짤없이’ 되돌아보고 내년도 계획을 거품 없이 세울 수 있기를.

임경선 칼럼니스트·『어떤 날 그녀들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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