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다녀온 김연수 “원조는 주는 사람도 변화시키죠”

중앙일보

입력 2011.11.29 01:51

업데이트 2011.11.29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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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오늘 부산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 정부 공동 주관으로 제4차 세계개발원조총회가 개막한다. 160여 개 나라 대표들이 참여해 다음 달 1일까지 ‘받는 사람이 처한 환경, 삶의 맥락을 고려한 바람직한 원조란 무엇일까’를 주제로 다양한 방안을 논의한다. 지난 12~17일 국제개발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에 다녀온 소설가 김연수(41)씨가 현장에서 느낀 원조에 대한 생각을 보내왔다.

방글라데시 실헷 주 디네르코 마을에 사는 파하나 배검은 올해 스물한 살이다. 그녀는 3년 전 결혼해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다. 지난 16일 그의 집을 찾았을 때 파하나는 꽃무늬 천이 늘어진 사주식 침대에 앉아 한국에서 온 나를 힐끔거린다. 궁금한 게 많은 눈동자다. 나 역시 궁금한 게 많다. 예컨대 네 모서리에 납작한 각목을 이어붙인 그 사주식 침대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남편일까, 시아버지일까? 하지만 그런 질문 대신에 “아이는 몇 명까지 낳고 싶으냐?”는 말이 튀어나온다. 파하나는 민망하다는 듯 웃더니 그런 건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문간에 선 시어머니를 쳐다본다.

 “아들과 상의해서 결정할 거예요.” 시어머니의 말이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방문객들에게 대접할 차를 끓이느라 자리를 비우자, 파하나는 황급히 털어놓는다. 내년 6월 4일이 예정일인 둘째가 아들이라면 더 이상 낳지 않겠다고. 결혼하기 전까지 학교에 다닌 파하나는 시어머니와는 다른 삶을 원한다. 과연 파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기(雨期)에는 사방이 완전히 물에 잠기고 건기(乾期)에는 강이 바닥을 드러내는 열악한 환경의 마을에서 이런 질문은 우문일까? 그렇다면 이렇게 묻는다면 어떨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해답은 파하나에게도, 또 내게도 중요하다.

 파하나에게는 같은 마을에 사는 아스마 배검(35)의 삶이 가능한 미래 중 하나다. 맏며느리인 아스마는 열흘 전 다섯 번째 아이를 출산했다. 시동생은 아직 미혼이다. 다른 마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두 형제는 우기에는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건기에는 건축업자에게 고용돼 돌 깨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날벌레들처럼 빈곤은 늘 그들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아스마는 피임주사까지 맞았지만 실패했다. 인터뷰 내내 그녀 뒤에 앉아 있던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피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모든 건 신의 뜻이라고 말한다. 물론 피임은 신의 뜻이 아니다. 그건 사람의 뜻이다.

 신의 뜻과 사람의 뜻,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미래가 존재한다. 두 뜻은 때로 서로 맞서고, 때로 함께하면서 단 하나의 구체적인 현실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그러나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숨지는 영유아가 한 해 18만 명이 넘는 방글라데시에서 나는 신의 뜻을 가늠하지 못하겠다. 대신에 거기서 만난 지역보건요원 쇼토부티(25)의 파란색 가방 속에 죽음에 맞서는 인간의 뜻이 담겼다는 건 알겠다. 그 가방에는 문맹자들을 위해 임신과 출산 과정, 출산 시 지켜야 할 수칙, 위급상황을 판단하는 방법 등을 그림과 사진으로 보여주는 교육자료와 면도칼·비닐·비누 등으로 구성된 출산 키트 등이 들어 있다. 그녀는 이 가방을 메고 디네르코 마을을 비롯해 인근 1246가구를 일일이 방문한다. 쇼토부티는 누가 임신했고, 누구의 출산이 임박했는지 다 알고 있다.

 쇼토부티는 벵골어로 ‘엄마와 아이’를 뜻하는 ‘마모니(MaMoni) 프로젝트’에 따라 활동하는 보건요원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인도 등지에서 모자보건 사업을 실시한 뒤 출생 후 28일 안에 5세 이하 유아사망의 57%가 일어나며 그중 75%의 아이들은 사흘 안에 죽는다는 걸 알아냈다. 병원을 지어봐야 근무할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이라 첫 사흘을 잘 넘기려면 가까이에서 산모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보건요원을 지역민 중에서 뽑는 이유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단순히 병원을 대체하는 것 이상이다. 보건요원은 출산과 신생아 돌봄에 대한 올바른 의료 지식을 전파한다. 여성들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때 이 지식을 이용할 것이다. 한 사람의 미래는 그렇게 바뀐다. 이 지식이 모든 여성의 삶 속으로 스며들면, 그때는 현실이 바뀔 것이다. 보건요원은 현실을 바꾸는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다.

 보건요원이 된 뒤 자신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묻자, 쇼토부티는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기술을 스스로 터득했다고 대답한다. 그 의사소통의 본질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눠줄 수 있을 뿐이다. 남의 것을 강제로 뺏는다면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우리는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서로 도울 때 우리는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현실은 바뀐다는 것. 그게 바로 원조를 통해 우리가 배우는 교훈이다.

 파하나의 방 벽에는 액자가 걸려 있다. 거기에는 벵골어로 이런 문장들이 적혀 있다. “교육을 받으면 열린 마음을 갖는다. 글을 잘 쓰면 축복을 받는다.” 그 액자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올바르게 생각하면 정직과 인류애의 꿈을 이루게 된다.” 꿈들을 생각한다. 개인적인 바람이든, 많은 사람의 소망이든. 어떤 꿈이 이뤄진다면, 그건 수많은 사람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뜻이라는 걸 깨닫는다.

방글라데시=김연수(소설가)

숫자로 본 저개발국 보건의료

10억  세계에서 생애 한 번도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의 수

200만  세계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아이를 낳는 여성의 수

350만   세계에서 부족한 보건의료인력(의사·간호사·조산사·지역보건요원 포함)의 수

35만8000  세계에서 출산 도중 사망하는 여성의 수

55%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시골 가정에서 발생하는 사산(死産)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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