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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학교만 죄인인가 … 장애 차별하는 모두가 ‘도가니’의 공범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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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중증 지적장애 1급 여중생을 키우고 있는 어머니 김현숙씨가 편지를 보내왔다. 제목은 ‘장애인 부모로서 도가니를 보고 분개하는 사람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 김씨는 “영화를 보며 분개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런 학교 그런 기숙사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의 마음을 아는가”라고 묻는다. “장애 아이들도 도가니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집단시설이 아닌, 장애인·비장애인 학생들이 함께 있는 환경에서 공부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집 앞에 버스도 다니고 지하철도 다니고, 수퍼도 있고 빵집도 있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턱도 없다. 환경이 좀 낫다는, 국가기관에서 감독하는 기관은 자격 조건도 까다롭고 대기자가 많아 들어가기 힘들다. 어쩔 수 없이 마치 유배라도 가듯 지역사회와 단절된 인적 드문 곳에 자리 잡은 시설에 가게 되는 이유다.

 김씨는 “아이가 어떻게든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마치 전투하듯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20년 동안 교육시키고 준비시킨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가 죽고 나면 우리 아이는 과연 무슨 대책이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없다’이다.”

 올봄 록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씨도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둘째아들의 장애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아내의 소원은 아들보다 단 하루 더 사는 것”이라고 말해 많은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김현숙씨도 “이제 더 이상 장애 자녀 부모들이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기’란 비극적인 소망을 말하지 않기를 소망한다”고 썼다. 과연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기나 한 것일까.

 어제 보도된 전남 장흥군의 정신지체 장애인 A씨(21·여)의 사례는 더 몸서리쳐진다. A씨의 부친은 혼자 버스를 타지 못하는 딸을 위해 10년 전 고향으로 이사했다. 걸어서 학교에 다니던 딸을 동네사람들이 수시로 성폭행했다. 가해자는 A씨 가족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고, 핏줄을 나눈 친척마저 끼어 있었다. 『익명의 섬』(이문열) 같은 소설 줄거리라면 차라리 인간의 허위의식과 이중적 윤리관을 짚어 준다고 해석할 수 있겠지만, 장흥군 사건은 그야말로 벌거벗은 추악한 범죄 그 자체다.

 김현숙씨는 편지에서 “장애인 시설이 들어온다 하면 지역 주민들이 반대한다. 집값 떨어진다며 벌이는 집단시위 안에 숨겨진 ‘함께 살기 싫다’는 의미가 느껴진다”고 호소했다. 인화학교를 폐쇄했다고, 영화 ‘도가니’ 상영이 끝났다고 장애인 차별·학대도 끝난 것일까. 인화학교에 돌 던지고 시골 주민 몇 명을 처벌하면 나머지 국민에겐 다 면죄부가 주어질까. 아니다. 도가니는 공동범행이다. 인화학교에 모든 것을 떠넘기고 싶어 하는 담장 바깥 공범들의 책임이 크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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