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폐교에선 '창조적 음모'가 싹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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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줄기의 오대산을 끼고 도는 구비구비 진고개길 아래 위치한 신왕초등학교 삼산분교. 1년전 폐교돼 인적이 끊긴 이 학교에서 지금 ''엽기적인 음모'' 가 펼쳐지고 있다.

학교명이 붙어 있던 교문 두 기둥엔 GR테크.온나라커뮤니케이션.코파코.플러스원I&T 등 들어본 적 없는 회사들의 현판이 금방 단 듯 빛나고 있다.현관에는 ''바른 생활'' 대신 ''신기술 창조'' 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한여름 초자연을 배경삼은 폐교의 교실안에선 정체모를 사이버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학생들이 모두 떠난 폐교가 어느새 첨단 연구실로 바뀌었다. 장마 틈새에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7일 마치 비밀을 당부한 듯 아주 조심스럽게 연구소 개소식이 있었다.

이들 벤처기업이 강원도 폐교에 연구소를 설립키로 결심한 것은 올해초. 강릉이 고향인 GR테크의 방헌균 대표는 "인터넷 전용선만 연결하면 연구개발 환경이 서울에 비해 부족한 점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고 말했다.

지난 4월 강릉시 교육청과 연간 임대료 2천3백만원에 5년간 사용키로 계약했다. GR테크의 자회사인 온나라커뮤니케이션.코파코와 협력사인 플러스원I&T의 연구개발팀도 함께 입주키로 결정했다.

폐교에 있던 관사와 식당에 침대.식탁 등을 들여놓으니 마치 새 집 같은 분위기였다.초등학생용 화장실과 샤워장은 어른용으로 뜯어고쳤다. 교실 하나는 미혼자용 숙소로 단장했다.학교 옆 공터엔 옥수수와 상추도 심었다.

온나라커뮤니케이션 박규원 대표는 "차를 타고 10분만 나가면 소금강 관광지" 라며 "직원들에게 일만 하라고 산골에 유배시키려고 했더니 휴양지에 휴가보내는 꼴이 된 것 같다" 며 껄껄 웃는다.

마을 주민들도 폐교 연구소에 거는 기대가 크다. 연구소 측에서 올 여름방학부터 컴퓨터교실을 열어 학생들에게 인터넷과 PC 교육을 시켜주기로 한 때문이다.이미 교실 하나를 ''컴퓨터 교실'' 로 지정해 팻말까지 달아놨다. 7, 8월중 10여명의 일본인.미국인 연구원이 입국하면 외국어 교실을 연다고 한다.

연구소 관리는 오는 9월에 퇴직하는 인천동수초등학교 정수일 교장에게 맡기기로 했다."아무래도 교장 선생님이 마을 주민과의 관계나 학교 시설 관리도 잘 하실 것 같았습니다."

방대표는 삼산분교에서 1㎞ 정도 떨어진 퇴곡분교도 임대받아 바이오연구센터로 꾸미고 있다. 토양개량.계면활성.수자원정화 등 10개 미생물 분야를 중점 연구할 바이오연구센터는 인근 주문진농공단지에 자체 공장을 건립할 예정이다.

1~2년 내에 7~9개의 폐교를 더 임대받아 첨단 기술 연구소를 차례로 입주시킨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소금강 주변 폐교에 연구소들을 줄지어 입주시켜 ''소금강밸리'' 로 만들 심산이다. 이를위해 실리콘밸리처럼 강원지역 대학과의 산학연협력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단층인 학교 건물도 가능하다면 증축해서 다양한 지방 업체들이 무료로 입주할 수 있는 벤처타운을 만들 생각이다.

강릉대 방덕균 연구지원담당관은 "서울에 집중된 기술업체들이 지방으로 내려와 산학연이나 고용창출 등 지방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폐교 연구소에 거는 지방 대학들의 기대가 크다" 고 말했다. 삼산분교의 엽기적 음모는 이처럼 건설적이고 창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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