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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 리턴〉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

중앙일보

입력

전에 도쿄를 방문해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한 공중파TV에서 엉뚱한 토크쇼를 방영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인들의 신체적 특성, 음악에 대한 리듬감, 그리고 식성에 관해 다양한 패널들이 각기 의견을 내놓는 거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인들은 기린 고기를 먹는가? 등의 내용이다. 이 자리엔 물론 아프리카인들도 참석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말도 안되는 토론을 벌이는, 일종의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이 자리에 참석해 사회를 보던 인물은 기타노 다케시. 우리에게도 이제 낯익은 영화감독 겸 배우, 그리고 코미디언이다. 역설적으로, 이 공중파 TV 프로그램은 기타노 다케시의 재능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새삼 실감케 해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대중을 웃기는 '코미디언'이자 동시에 죽음에 관해 진지하게 사색하는 '영화감독'이기도 하니까.

3차 일본문화 개방으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키즈 리턴〉이 국내 개봉한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바 있는〈기쿠지로의 여름〉역시 조만간 극장가에 선보일 예정이기도 하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일본문화 개방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감독으로 꼽을 수 있다. 〈하나비〉,〈소나티네〉등의 영화가 (낮은 흥행성적에도 불구하고)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는 기타노 다케시라는 인물의 절반 밖에 모르는 상태다. 앞서 언급했듯, 코미디언으로서의 그는 일본의 공중파 TV 프로그램이 개방된 이후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코미디언으로 활동할 때 '비트 다케시'라는 예명을 사용하곤 한다. 1970년대부터 '투 비트'라는 개그 콤비를 결성해 일본 공중파 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을 서서히 장악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올 나이트 일본〉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빨간 신호등이 켜 있을 때도 모두 함께 건너면 무섭지 않다"는 등의 위악적 유머로 화제를 일으켰다. 이후〈다케시 코미디 울트라 퀴즈〉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확실하게 스타급 코미디언으로 급성장한 뒤 기타노 다케시는 새로운 도전을 한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베니스 영화제 수상 등의 화려한 경력을 지닌,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감독으로 명실상부하게 공인받은 상태다.

기타노 다케시의 필모그래피는 크게 두 범주로 구분된다. 이미 국내 개봉한〈하나비〉와 〈소나티네〉처럼 '야쿠자 영화'의 범주 내에서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아내는 작품이 있고, 이와 달리 평이한 드라마를 만든 경우도 있다.〈키즈 리턴〉과 〈기쿠지로의 여름〉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키즈 리턴〉은 당시 교통사고를 당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체험을 했던 기타노 다케시가 새로운 의욕을 보인 역작. 각기 권투선수와 야쿠자 조직원으로 사회의 '쓴맛'을 배워가는 두 젊은이가 등장하는 청춘드라마다. 이 영화는 다케시가 만든 어느 영화보다 긍정적이고, 따뜻하다.〈키즈 리턴〉은〈하나비〉등의 비교적 사색적인 영화들만 감상했던 국내 관객들에겐 진기한 체험이 될법하다.

〈기쿠지로의 여름〉역시 비슷하다. 어머니를 찾아 나선 한 아이와 함께 기타노 다케시가 동행하는 줄거리의 이 영화는〈엄마찾아 삼만리〉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처음엔 아이를 홀대하고 때로 의도적으로 이용하던 이 아저씨는 점차 자신의 마음을 아이에게 열어보이게 된다. 그 과정이 훈훈하기 이를 데 없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영화에서 '정물적 풍경'에 집착하는 기타노 다케시의 집념을 드러내기도 한다. 대개 생략이 많고, 리듬이 툭툭 끊어지는 대목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영화는 풍부한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풍경이 근사한 로드무비로 완결되고 있다. 앞으로 감독은 어떤 영화세계를 펼쳐보이게 될까? 언젠가 기타노 감독은 이런 이야길 한적 있다. "난 일본 영화계의 에이즈적인 존재"라고.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은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아마도 훨씬 다양하고 풍부한 목록으로 채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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