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질 하는 한국 럭비

중앙일보

입력

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을 누르고 7인제와 15인제를 석권,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했던 한국럭비가 다시 뒷걸음질 치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대표적인 비인기 종목으로 철저한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일궈내 공익광고에까지 등장하며 주목을 받았던 럭비가 지난 주 끝난 제17회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일본에 져 어렵게 정복한 정상의 자리를 내준 것.

2년전 우승멤버 중 절반이상을 신예들로 교체하고 이번 대회에 임했지만 와신상담하고 출전한 일본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럭비는 방콕아시안게임에 이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간과할 수 없는 종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럭비는 2년전 아시아정상에 오른 이후에도 재정지원이 조금도 늘지 않은데다 단1개의 실업팀도 창단되지 않아 이전의 척박한 현실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고교 팀이 각각 23개씩 있어 그나마 선수공급창의 역할을 하지만 선수를 선발하는 대학은 고작 6개에 불과해 매년 고교를 졸업하는 160~170여명의 선수들 중 50여명만이 럭비를 계속할 수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더해 실업팀은 삼성SDI, 포항강판, 한국전력 등 3개팀에 불과해 상무까지 포함하더라도 대학을 졸업한 선수들이 럭비를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은 매우 좁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와 함께 턱없이 부족한 재정지원으로 선수들이 국제경기 경험을 쌓을 기회가 제한돼 있다는 것도 한국럭비가 한 발 앞으로 내딛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심지어 일본 아오모리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서는 단1명의 실무임원도 동반하지 않아 경기종료후 숙소로 돌아온 감독이 팩스를 통해 경기결과를 송고해야 했던 것은 우리나라 럭비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런 우리의 현실과는 정반대로 일본은 중,고,대학,실업을 합쳐 6천여개의 팀을 보유해 풍부한 `럭비인프라'를 갖춘데다 야구, 축구 다음가는 구기종목으로 정착, 풍부한 재정지원 속에 국제대회경험을 통해 기량을 발전시켜 나갔다.

럭비인들은 한국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다시 정상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실업팀을 추가로 창단해 선수층을 유지하는 동시에 재정지원을 확충, 선수들이 국제경기에 참가할 기회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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