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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78> 아랍의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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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지난해 말 이후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랍의 봄(Arab Spring)’이라 불리는 민주화 운동으로 튀니지·이집트·리비아 등에서는 수십 년간의 독재가 종식되고 정권이 전복됐습니다. 아랍의 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인근 시리아·예멘 등으로 확산됐습니다. 튀니지 등 독재정권이 이미 붕괴된 국가들은 새로운 선거제도를 통해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현재진행형인 아랍의 봄에 대해 상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최익재 기자

노점상 분신 자살이 도화선 … 벤 알리 대통령 야반도주

튀니지

지난 1월 27일 튀니지 중부 시디 보우지드의 한 주민이 자신의 신발에 벤 알리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천을 둘렀다. 이슬람권에선 신발로 때리는 것을 큰 모욕으로 여긴다. [시디 보우지드 AFP=연합뉴스]

아랍의 봄에 불을 댕긴 국가다. 국화(國花) 이름을 따 ‘재스민 혁명’으로 불리는 튀니지 혁명은 2010년 12월 한 젊은 노점상의 분신자살에서 시작됐다. 남동부 시디 부지드에서 과일 노점상을 하고 있던 무함마드 부아지지(26)는 팔고 있던 과일을 단속반에게 압수당했다. 부아지지는 이를 되찾기 위해 해당 관청을 찾았지만 당국은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분신을 시도했고, 병원에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부아지지의 분신은 실업과 고물가 등에 시달리고 있는 튀니지 국민을 자극했다. 특히 부아지지가 대학 졸업자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과일 노점상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는 가난한 국민을 대변하는 순교자로 불렸다. 튀니지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3700달러(약 410만원)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Zine El Abidine Ben Ali·75) 대통령 일가의 부정축재 사실이 폭로 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를 통해 알려지자 반정부 시위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23년간 철권통치를 해왔던 벤 알리 체제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벤 알리는 결국 2011년 1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야반도주했다. 시위대 5000여 명이 수도 튀니스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자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도피한 것이다. 결국 한 달간의 튀니지 사태로 인해 수십 명이 사망했다. 외신들은 벤 알리가 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려 했지만 군부가 이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대통령 퇴진 요구 시위대에 발포 … 무바라크 재판 받는 중

지난 1월 29일 이집트 시민들이 수도 카이로에서 진압군 탱크에 올라가 국기를 흔들고 있다. 이날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정치 개혁을 발표했지만 성난 시민들의 시위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카이로 로이터=뉴시스]

이집트 재스민 혁명의 여파는 튀니지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집트 국민은 30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83)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했다. 결국 ‘살아 있는 파라오’로 불렸던 무바라크도 18일간에 걸친 시민혁명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 혁명은 2011년 1월 튀니지 혁명에 자극을 받은 민주 인사 3명의 분신으로 촉발됐다. 이는 30년간 숨죽이고 있던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욕구를 폭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국민은 이미 억압적인 독재체제와 빈부격차, 치솟는 물가 등 견뎌내기 어려운 상황에 몰려 있었다. 결국 이들은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1월 25일 본격적인 민주화 시위가 시작됐다. 그러자 무바라크 정부는 강경 진압으로 맞섰다. 1월 29일엔 시위 진압 경찰의 발포로 시위대 수십 명이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과 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는 이집트 시위대를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2월에 들어서자 시위 참여자는 급증했다. 타흐리르 광장에 100만 명 이상이 모였다. 독재자 무바라크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무바라크는 차기 대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자신의 권력 일부를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이양하겠다는 양보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분노한 시민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무바라크는 2월 12일 카이로의 대통령궁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홍해 휴양지 샤름 엘셰이크로 도피했다. 무바라크가 물러나기까지 300명 이상이 사망했고 5000여 명이 부상했다. 무바라크는 현재 시위대를 유혈진압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8개월 이상 버티던 카다피, 고향 시르테서 비참한 죽음

지난 8월 24일 리비아의 한 시민군이 무아마르 카다피의 딸 아이샤의 얼굴을 본떠 만든 황금 인어상으로 장식된 소파에 앉아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시민군들은 전날 트리폴리를 장악하고 카다피 일가의 주택 등을 접수했다. 트리폴리가 시민군에 함락되기 직전 카다피는 “승리하지 못하면 순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리폴리 AP=연합뉴스]

리비아 아랍에서 발생한 일련의 민주화 혁명에서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은 독재자는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69)다. 그는 2011년 2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8개월 이상을 버티다 결국 고향에서 죽음을 당했다. 카다피는 튀니지의 벤 알리와 이집트의 무바라크와는 달랐다. 카다피는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초강경 대처했다. 결국 반정부 시위는 내전으로 발전했다. 대규모 살상이 벌어지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은 화력이 열세인 시민군을 지원했다. 카다피는 내전 중 여러 차례에 걸쳐 “결사항전을 하다 순교하겠다”고 다짐했다. 내전이 지속될수록 카다피군은 궁지에 몰렸다. 3월에 들어서자 시민군은 리비아의 주요 도시를 거의 장악하고 과도국가위원회(NTC)를 출범시켰다. 국제사회도 카다피의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을 비난하면서 그의 퇴진을 압박했다. 카다피는 시민군이 8월 말 수도 트리폴리마저 장악하자 자신의 행적을 드러내지 않은 채 도피행각을 시작했다. 가족과 측근들은 속속 해외로 도피했다. 하지만 카다피는 10월 20일 자신의 고향인 시르테에서 발견돼 사망했다. 그의 사망 원인에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생포됐던 카다피가 시민군에 의해 폭행당했으며 결국 살해됐다”고 전했다. 그가 체포돼 사망에 이르는 과정은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찍혀 전 세계에 공개되기도 했다. 카다피는 시민군에게 체포될 당시 “쏘지 마, 쏘지 마”라고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42년간 리비아에서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카다피의 마지막은 그 어느 독재자보다도 처참했다.

시위대 엄청난 희생에도 해결 기미 안보여

시리아·예멘 튀니지·이집트·리비아의 독재정권들이 무너진 이후에도 아랍권의 민주화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현재 국제사회는 시리아와 예멘 정부의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유혈진압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시위 진압군의 발포로 민간인이 희생되는 사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에서는 이슬람 최대 축제인 이드 알아드하(희생제)가 시작된 지난 6일에도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시리아 정부군이 수도 다마스쿠스 북쪽 도시 홈스에서 반정부 시위대를 공격해 최소 13명이 숨졌다. 전날에도 홈스 인근에서 정부군에 의해 4명이 숨졌다. 시리아 인권단체는 “정부군이 탱크 등 중화기를 동원해 민주화 시위대를 진압했다”고 밝혔다. 2000년에 집권한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 Assad·46) 시리아 대통령은 지난 3월 시작된 반정부 시위를 강력히 진압하고 있다. 유엔은 그동안 3000명 이상의 반정부 시위대가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는 시위대를 무장폭도로 규정하고 강경진압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예멘 사태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알리 압둘라 살레(Ali Abdullah Saleh·70)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유혈사태 종식을 위한 중재안에 합의했지만 번번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난 2일에는 정부군의 발포로 시위대 12명이 숨졌다. 예멘에서는 지난 1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1500여 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살레는 1978년부터 90년까지 북예멘 대통령을 지내다 통일 이후 지금까지 예멘의 대통령을 맡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서방 국가들이 시리아와 예멘 사태에 대해서는 적극 개입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이집트와 리비아 등과 달리 석유자원 등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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