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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넥슨은 왜 룩셈부르크를 선택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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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심서현
경제부문 기자

지난 10일 오후 4시, 도쿄증권거래소가 넥슨의 다음 달 상장을 공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이 들썩였다. 시가총액 10조원대라는 규모도 화제가 됐지만 핵심은 ‘왜 하필 일본이냐’였다. ‘한국 기업이니 국내 투자자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그 시각 게임 전시회 ‘지스타’가 진행되는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는 ‘왜 룩셈부르크인가’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열리고 있었다. 부제는 ‘넥슨은 왜 룩셈부르크를 택했나’. 5월 넥슨은 유럽법인을 영국에서 룩셈부르크로 옮겼고 데이터센터도 이전 중이다. 이 나라 정부가 ‘낮은 세금, 최소 규제’를 약속하며 유치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다. 넥슨이 이전을 결정하자 룩셈부르크 왕세자가 방한해 서울 역삼동 넥슨 사무실을 찾아 감사를 표했을 정도다. 이날도 룩셈부르크는 국내 게임업체들에 “넥슨처럼 우리나라로 오시라”며 설득에 나섰다. 국내에서는 “당연히 국내에 상장해야지 왜 외국이냐”며 게임업체를 추궁하는데 외국은 정부가 나서서 게임업체 모시기에 나선 것이다.

 게임업계에 도는 말이 있다. 한국 정부와 주류 사회가 게임회사에 원하는 것은 딱 세 가지라는 것. “첫째, 달러 많이 벌어와라. 둘째, 일자리 많이 만들어라. 셋째, 우리 애는 게임 못하게 하라.” 2분기 게임 수출액은 6058억원으로 전체 콘텐트 수출 1조725억원의 절반 이상인데도 여전히 각종 규제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업계의 속앓이를 담은 농담이다. 20일 시행되는 ‘셧다운제도’도 뚜렷한 원칙이 없어 ‘스타크래프트’는 제외되고 ‘스타크래프트2’는 해당되는 식이다.

 물론 넥슨의 일본 상장이 단지 국내의 게임 규제 때문만은 아니다. 이 회사는 글로벌 성장과 해외 게임업체 인수합병에 유리한 조건을 고려해 오래전 국외 상장을 정했다. 하지만 김성진 넥슨 유럽법인 대표가 세미나 후 기자에게 건넨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색인종으로서 유럽에서 사업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래도 '관(官)' 때문에 힘든것은 없다. 룩셈부르크에서는 정부를 찾아다니며 정책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게임업체들을 규제 대상으로만 보면서 왜 국내 투자를 하지 않느냐고 탓하기 전에 게임산업이 발달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심서현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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