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페스티벌'은 도전·젊음 상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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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의 매력은 라이브 공연에 있다. 라이브는 음반이나 뮤직 비디오의 편집 같은 가공이 없이 록의 원초적 열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과거 미국 록그룹 키스는 록의 '현장성'을 강조하면서 "라이브의 열기 없는 록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록이 서로 만나야 힘을 더하는 젊음의 특성을 반영한 음악임을 전제한다면 라이브는 당연히 청춘의 공동축제, 즉 록 페스티벌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 그 카니발로서의 성격 자체가 기성 가치와 제도에 대한 젊은 세대의 도전이다.

따라서 록 페스티벌은 젊음의 음악적 행사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의식의 발로이다. 1969년 전설적인 우드스탁 공연이 이를 잘 말해준다.

우드스탁을 비롯한 60년대의 록 페스티벌들은 젊은 세대의 의식을 고취시키며 록의 힘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이후 서구에선 록이 위축될 때면 놀이든 의식의 집합이든 젊은이들이 뭉치는 록 페스티벌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론을 확립해왔다.

만약 록이 있더라도 록 페스티벌이 없다면 그것은 젊음의 공동체의식이 부재한, 사실상 록의 폐허를 반증하는 것이다.

올 여름 국내에 록 페스티벌이 동시다발로 열린다는 것은 록이 변방에 머물러 있어도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으며 더 나아가 부활을 꿈꾸고 있다는 증거다.

저변이 취약한 국내 록의 입장에서는 록 페스티벌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뮤지션들은 공연장에 모인 관객들과 열정적인 록으로 대화를 나누고, 관객들은 또한 그들끼리 능동적으로 호흡을 나누게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록은 공연을 통해 미학을 완성한다' 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젊음의 발산은 질서를 대전제로 한다.

외국에서도 이따금 흥분한 객석이 공연을 그르치는 사례들이 있어왔다. 지난 69년 미국 알타몬트 공연은 무질서에 따른 사상자 발생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오히려 록의 황폐화를 부르기도 했다.

우리는 공연개최에도 힘써야 하지만 공연문화를 정착시키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한다. 올해가 록 페스티벌의 원년이 되기 위해선 관객과 주최측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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