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드래프트 A부터 Z까지 (6) 최고· 최악의 드래프트

중앙일보

입력

◆ 최고의 드래프트

하킴 올라주원,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 존 스탁턴, 케빈 윌리스, 셈 퍼킨스, 오티스, 도프, 제롬 커쉬, 마이클 케이지, 앨빈 로버트슨. 위 선수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1984년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에 데뷔한 선수들이다.

마이클 조던이 포함되있는 이유만으로 이해의 드래프트가 역사상 최고의 드래프트로 꼽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 열거한 선수들 중 퍼킨스, 도프, 케이지만을 제외하고 모두 올스타에 한번 이상 선정됬으며 앞의 세 선수도 올스타에 못지 않은 실력을 나타냈다. 또 이들은 모두 10년이상 선수 생활을 했고 지금도 현역에서 뛰고 있는 선수가 6명이나 된다.

80년대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의 라이벌 대결 (아울러 레이커스와 셀틱스의 팀 라이벌로도 유명한)이 NBA의 인기에 초석을 놓았다면 조던을 필두로 이들 84년 드래프트 동기들은 NBA를 최고의 프로 스포츠로 만들어 놓은 주역이라 볼 수 있다.

그외에 현재 리그를 주름잡는 선수들이 즐비한 92년 드래프트를 꼽을 수 있다. 샤킬 오닐, 알론조 모닝을 위시하여 크리스챤 레이트너, 톰 구글리오타, 라트렐 스프리웰, 로버트 호리, 월트 윌리암스, 짐 잭슨, 라폰소 일리스, 클라렌스 웨더스푼 등이 데뷔한 이 해의 드래프트는 당시 대학선수들의 실력과 명성에선 역대 최강의 드래프트로 꼽힌다.

◆ 최악의 드래프트

로이 타플리, 윌리엄 배드포드, 크리스 위시번, 렌 바이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86년 드래프트때 지명된 선수들이다.

드래프트에 지명된 선수들 중 현재 팬들에게 기억되는 선수론 은퇴한 1라운드 1순위의 브래드 도허티. 클리브랜드의 주축 센터로 활약하고 있던그는 결국 부상으로 일찍 유니폼을 벗게 됬다. 또 장거리 슈터로 명성을 떨친 현 시애틀 소속의 척 퍼슨, 올시즌 우승팀인 레이커스에서 오닐의 백업 센터로 출전한 존 셀리 정도가 기억에 남을 뿐이다.

사실 이 해 드래프트의 비극은 드래프트 직후 시작됬다. 앞서 말한 렌 바이스는 도허티 다음으로 보스턴의 2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드래프트 당일 저녁 축하파티에서 코카인 남용으로 사망 충격을 던져준 것이었다.

그 뒤 악재가 꼈는지 이 해에 입단한 유망주들은 거의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기 시작 했다. 로이 타플리는 약물 검사에 4번이나 걸려 결국 리그에서 완잔 추방 당했고 위시번, 배드포드도 약물에 의해 그 기량을 제대로 펼치 못한 채 리그를 떠났다.

이 외에 케니 워커는 `89년 슬렘 덩크대회 우승자`란 이름만을 남긴 채 그저 그런 선수로 리그를 떠났고 당시 래리 버드의 분신이라 불렸던 마크 알레어도 프로에 와선 이류선수로 추락 얼마안가 결국 유니폼을 벗었다.

이들의 당시 기량과 명성은 92년 드래프트 맴버에 비해 결코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메스컴과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무엇이 86년 드래프트를 이런식으로 만들었을까. 참고로 데니스 로드맨도 86년 드래프트 2라운드 27순위로 지명됬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진 않았지만 작년 드래프트와 빈스 카터가 지명됬던 98년 드래프트도 선수들이 별 볼일 없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이번의 2000년 드래프트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그 대답은 한 4~5년쯤 흘러야 나올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