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권력 실세 수사 머뭇거리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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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정권 실세 뇌물상납 폭로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다시 날을 세웠다. 이 회장과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돼 잠시 주춤하던 검찰 수사가 신 전 차관을 넘어 정권 핵심 실세 쪽으로 칼끝을 겨눈 것이다. 서울지검은 엊그제 현 정권 실세의 측근으로 알려진 문모씨의 서울·경북 김천 자택과 그가 운영하는 업체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 회장이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일본 출장 때 향응 접대를 한 인물이라고 주장한 SLS 일본 현지법인장 권모씨의 국내 거주지도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찰의 이번 압수수색은 야당이 의혹을 제기함에 따라 등 떠밀려 나선 측면이 없지 않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이 회장이 정권 실세의 측근인 문모씨와 국회의원 비서관인 박모씨에게 현금 30억원과 자회사 소유권을 넘겼다는 구체적인 자료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회장도 SLS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구명 로비를 위해 신 전 차관보다 윗선에 접촉하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금품과 회사를 넘겼다고 주장해 온 만큼 검찰로서도 확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검찰은 동기야 어찌됐든 공개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만큼 제기된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이미 SLS그룹에서 문모씨가 운영하는 업체로 넘어간 자산이 200억원대에 이른다는 얘기마저 나오는 판이다.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 그저 이 회장의 입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지 이번엔 끝장을 봐야 한다. 변죽만 울리다 꼬리 자르기식 수사로 끝나선 대통령 주변에 대한 의혹만 더 키우기 십상이다.

 정권 임기 말에 불거지는 권력형 측근 비리 의혹은 레임덕을 가속화한다. 검찰이 성역 없는 수사로 정권 실세와 연관된 이번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는 게 그나마 레임덕을 늦추는 길이다. 검찰은 이 회장 폭로 사건이 불거진 이후 수사를 머뭇거리는 듯한 인상을 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번 압수수색을 계기로 검찰은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수사에 총력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 그게 국민에게 받아온 불신을 씻고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