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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관광 가시죠, 장바구니 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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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은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다. 그 지역의 문화 관광 자원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사진은 부산 구포시장의 채소 골목.

“우리 구포는예, 낙동강을 끼고 있어서 민물고기가 억수로 유명합니더.”

 빨간 고무 대야 안에서 자연산 잉어와 붕어가 펄떡펄떡 뛰고 있는 부산 구포시장 수산물 골목. 구포시장상인협회 박현영(54) 회장이 골목 안으로 안내하면서 구포시장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 골목 안에는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향어(잉엇과 물고기)회 골목이 있다. 14개 향어횟집이 골목을 이루고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삼천포 횟집’에 들어갔다. 길쭉길쭉 썬 향어가 한 접시 수북하게 나왔다. 맛이 고소해 자꾸 손이 갔다. 접시가 비워질 만하면 주인 아주머니가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향어회를 툭툭 던져주고 갔다. 3만원에 다섯 명이 회로 배를 채웠다.

 “이래 정이 있는 게 재래시장의 매력 아이가.”

 박 회장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향어회로 배를 채우고 구포 국수골목으로 향했다. 한국전쟁 당시 구호품 밀가루로 만든 것이 구포국수(사진)의 시초란다. 잔치국수와 비슷하지만 면이 더 부드럽고 부추가 들어갔다. 값은 3000원이었지만 양푼 밖으로 넘칠 듯이 푸짐했다.

 부산 구포시장은 이른바 문화관광 시장이다. 문화관광 시장은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이 2008년부터 재래시장을 각 지역 문화관광 자원으로 육성하기 위해 추진 중인 사업이다. 현재 전국에는 부산 구포시장을 비롯해 9개 문화관광 시장이 있다. 김동선(57) 중소기업청장은 “재래시장에 담긴 그 지역 역사, 문화, 삶은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될 수 있어 문화관광 시장 육성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알고 보면 흥미로운 재래시장이 꽤 있다. 당장 구포시장은 1919년 3월 29일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답게 3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만세운동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이달 말 시장 어귀에 공연 무대가 마련되면 상인들이 직접 무대에서 공연도 펼칠 작정이다.

 실제로 상인 예술단이 활동하는 시장도 있다. 충남 아산의 온양온천시장에서는 상인이 예술단을 꾸려 금요일 밤마다 장에 등불을 켜고 시장의 역사를 담은 연극을 공연한다.

 이미 전국적 관광 명소가 된 시장도 여럿이다. 서귀포 시민의 소박한 재래시장이었던 제주 매일올레시장은 제주올레를 걷는 올레꾼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전국 명소가 됐고, 강원도 속초의 속초관광시장은 주말마다 관광버스가 줄을 서는 동해안 관광 필수코스 중 하나다.

 시장에 가면 덤이란 게 있다. 시장에서는 제값을 다 내려고 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흥정도 걸어보기 일쑤다. 그건 시장이 바가지를 씌워서가 아니다. 아직 거기에는 정이 남아 있어서다. 이제는 그 넉넉한 인심이 그리워지는 세상이 왔다. 푸근한 인심이 있어 아무 때고 찾아가도 안심이 되곤 했는데, 이제는 시장도 한껏 단장하고 우리 곁으로 다가오려고 한단다. 반가운 마음에 시장을 향하는 걸음이 빨라진다.   관계기사 S2, S3면

 글=이상은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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