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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사람들 19명, 서울시 예산 점령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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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원순 서울시장(앞줄 오른쪽)이 3일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에서 열린 구청장들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박춘희 송파구청장(한나라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 구청장 오른쪽 이해식 강동구청장(민주당)이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짓고 있다. [뉴시스]

#1. 2일 밤 서울시청 공무원들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들이 기다린 건 이날 예산 자문회의에 참석한 자문위원의 호출이었다. 자문위원들이 문제제기를 한 분야의 공무원들은 서류 뭉치를 들고 회의실을 급히 오갔다. 한 공무원은 “숙제검사 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2. 자문회의가 시작된 이날 오후 2시. 자문위원인 김현국 서울교육희망네트워크 운영위원이 넥타이 없이 재킷에 배낭형 가방(색)을 둘러멘 채로 시청 별관 7층 회의실에 들어섰다. 그는 진보교육감 시민추대위 기획홍보위원장으로 일했다. 박원순 시장은 3일 기자 간담회에서 “과거 시민운동 할 때 넥타이 없이 색 하나 둘러메고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박원순의 사람들이 서울시 예산권을 사실상 점령했다. 이날 회의는 오후 11시15분까지 9시간15분 동안 이어졌다. 저녁은 회의장에서 도시락으로 때웠다. 회의에는 서울시 행정1부시장 내정자와 예산분야 공무원들도 참석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듣는 데 치중했다. 형식은 자문회의였지만 이 회의에서 결정된 쪽으로 예산은 편성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예산 방향을 듣고 조언하는 자리’라던 서울시의 설명과 달리 자문단 19명이 예산권을 틀어쥔 형국이었다. 법적인 근거도 없는 외부 자문회의가 1000만 서울시민의 삶이 걸려 있는 예산안을 요리한 셈이다.

 이명박·오세훈 전 시장이 벌인 사업의 퇴출과 축소는 일사천리였다. 한강르네상스, 교통방송 사옥 이전, 하이서울페스티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이다.

 박원순표 정책은 전면으로 배치됐다. 복지 예산은 5조원 수준으로 늘어난다. 임대주택 건설 등에 4000억원이 추가됐다. 공무원들은 용어부터 낯설었다. ‘두꺼비 하우징’ ‘착한소비지원센터’ ‘공동체돌봄센터’….

 공약의 정확한 개념을 알 리 없는 공무원들은 당황했다. 임대주택 개념도 달랐다. 으레 4인 가족을 생각했던 공무원들은 “1~2인용으로 주택 규모를 쪼개라”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공무원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자문단에 의해 이미 방향이 선 건은 예산 논의에서 빠졌다. 대중교통요금 인상 여부가 대표적이다.

 막바지로 가면서 자문위원들은 우선순위를 놓고 서로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가용 예산이 5000억원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요구하는 자료나 챙겨주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위원 간 힘의 편차도 있었다. 한 위원은 “시장의 의중을 더 잘 알고 있는 분들이 계셔서…”라며 말을 줄였다. 공무원들의 불편한 심경에 대해 한 위원은 “공무원들이 워낙 편하게 살아서 조금만 뭐라 해도 받아들이는 강도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원순 사람들이 나서면서 서울시에선 코드 맞추기도 시작됐다. 박 시장의 트위터에 팔로어로 등록하는 게 붐이다. 유창수 희망제작소 전 기획실장이 쓴 『박원순과 시민혁명』이란 책을 단체 주문한 부서도 있다. 서울시의 한 공무원은 “이 전 시장은 앞에서 ‘나를 따르라’는 스타일이었고, 오 전 시장은 뒤에서 채찍질을 했다. 새 시장은 소탈하고 소통을 중시하지만 자신의 관점까지 바꿀 만큼 열려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훈·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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