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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이 2억5000만원 … 태백 한 마을 300여 명 보험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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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윤모(56·태백시)씨는 2005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관절염과 당뇨로 태백의 H의원에 37회나 입원했다. 입원 일수만 2년이 훨씬 넘는 889일이다. 윤씨뿐 아니다. 남편은 비슷한 시기 585일, 딸은 389일, 아들은 113일, 사위는 44일 등 5명의 가족이 모두 2030일이나 입원했다.

이들은 실제로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이따금 병원에서 치료만 받았다. 모두 보험에 가입한 이들은 병원으로부터 허위 입·퇴원확인서를 발급받아 보험사로부터 모두 2억5000만원을 받았다.

 이렇게 허위 입원 등의 수법으로 150억원대 보험금과 요양급여비를 편취한 강원도 태백지역 병원장과 보험설계사, 가짜 환자 등 410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태백 인구(5만 명)의 거의 0.1%가 연루된 보험 사기로 규모와 적발 인원 면에서 역대 최고 수준이다.

 강원지방경찰청 수사과는 3일 허위 입원환자를 유치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거액의 요양급여비를 챙긴 혐의(사기 등)로 장모(73)씨 등 태백지역 3개 병원 원장과 사무장 등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변모(45·여)씨 등 전·현직 보험설계사 72명과 김모(26·여)씨 등 보험사기에 연루된 지역 주민 331명을 입건했다. 이들은 대부분 삼수동 주민들이다.

 장씨 등 병원장은 통원치료가 가능한 환자를 허위로 입원시키는 등 일명 ‘차트환자’ 330여 명을 유치해 건강보험공단에 부당 청구하는 수법으로 2007년 1월부터 지난 3월까지 요양급여비 17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다. 경찰 조사 결과 병원은 지역인구 감소와 시설 노후 등으로 경영이 악화하자 입원 당일에만 진료받고 집에서 생활하는 차트환자 등을 유치해 돈벌이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적에 눈이 먼 보험설계사들은 병원과 짜고 통원치료가 가능한 단순 염좌(삠) 환자 등에게 허위 입원 등의 수법을 알려주고 장기 입원환자로 둔갑시켰다. 이어 허위 입·퇴원확인서를 발급받아 140억원의 보험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보험설계사들은 허위 입원 방법 등을 알려주는 영업전략을 통해 친·인척과 지인을 고객으로 유치했다.

 범행에 가담한 주민들은 대부분 보험금을 지급받아 생활비 또는 도박 빚 변제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학생 김모(26·여)씨는 학자금 마련을 위해 ‘보드를 타다 넘어졌다’고 속여 7차례에 걸쳐 45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아 챙겼고, 또 다른 김모(63)씨는 도박으로 진 1억원의 빚을 갚으려고 14차례에 걸쳐 4100만원의 보험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김동혁 지방청 수사 2계장은 “‘태백지역에서 보험금을 못 타 먹으면 바보’라는 제보를 토대로 700여 명을 상대로 수사를 벌였다”고 말했다.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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