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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 2000] 독일·포르투갈전 관전평

중앙일보

입력

독일과 포르투갈의 A조 예선 마지막 라운드 경기.

루마니아전 무승부에 이어 잉글랜드전 패배. 독일은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었다. 포르투갈 전에서의 승리만이 마지막 남은 희망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하지만 결전을 앞둔 독일 진영엔 비상이 걸렸다. 지난 경기를 치르는 동안 팀의 주전인 크리스챤 치게, 마르쿠스 바벨, 옌스 예레미스 등이 부상을 당해 포르투갈전 출장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빈자리를 링케와 발락, 레머로 대체했지만 그들을 통해 지난 경기들에서 보여주었던 경기력 이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로 드러나고야 말았다.

초반부터 줄곧 독일은 경기의 주도권을 잡아 나갔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경기력에서의 우위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독일은 장신 공격수 얀커를 최전방에 배치하며 그의 타점 높은 헤딩을 이용하는 플레이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또한 이런 공격방법을 더욱 용이하게 하기 위해 공세시 포르투갈 진영 깊숙이 포진하면서 좌우 측면 쪽에서의 센터링을 올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성급함이 앞선 얀커는 포르투갈 수비수들의 집요한 마크에 스스로 페이스를 잃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찬스를 여러 차례 무산시키고 만다.

반대로 포르투갈은 수비 진영 깊숙이 포진하면서 이미 예측하고 있던 독일의 공세에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앞선 두 경기의 연승으로 8강행을 확정지은 느긋함에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피구와 루이 코스타 등을 출전시키지 않았을 뿐더러, 수비 쪽에서도 쿠투와 호르헤 코스타를 제외한 두 명의 좌우측면 수비수들의 교체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루마니아 전에서 여러 차례 실수를 범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주전 골키퍼 비토르 바이아 대신 후보 에스피냐를 기용한 것은 오히려 전력에 보탬이 된 듯한 인상마저 줄 수 있었다.

공격 쪽에서는 독일의 계속되는 공세 가운데 간간이 벌어진 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예리함이 돋보였다.

카푸초와 사 핀투의 정확한 연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움직임이 돋보인 파울레타로 연결되는 포르투갈의 날카롭고 기민한 역습은 다급한 독일 문전을 수차례 위협했다.

31분 문전 왼편에서의 보데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때리는 불운을 겪기도 한 독일은 결국 포르투갈의 역습을 견뎌내지 못하고, 4분 뒤 독일 진영 좌측에서 루이 호르헤와 2대1 패스로 돌파에 성공한 파울레타가 터치라인 부근에서 반대편을 향해 센터링한 공이 뛰어들던 콘세이상의 머리에 정확히 닿으면서 설마 했던 독일 팬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기 시작한다.

이어 후반. 전열을 채 추스르지 못한 독일은 시작 8분만에 오늘 경기의 히어로 세르지오 콘세이상의 우측으로부터의 중앙돌파에 이은 강력한 왼발 슈팅에 의해 추가 골을 허용하면서 완전히 무너지는 양상으로 돌입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어이없는 골키퍼 칸의 방어 실수는 마치 최근 독일 축구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대변해주는 한 단면인 듯했다.

이후 한 차례의 결정적인 실점 기회를 가까스로 넘긴 노쇠한 독일은 이어지는 포르투갈의 위력적인 역습에 적절한 프레싱을 가하지 못하는 빈약한 수비력을 드러내는 가운데 후반 26분 콘세이상에 해트트릭을 내주면서 결국 치욕의 완패를 당하며 고국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말았다.

후반 들어 독일은 전반과 다를 것 없이 일방적인 볼 점유 시간에도 불구하고 경기의 흐름을 끊는 패스미스와, 창의적인 부분 전술의 부재, 상대 수비수와의 신경전에 페이스를 잃고만 얀커의 부진 등으로 별다른 공격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연속된 추가 실점으로 전의마저 상실한 모습으로 종료 휘슬만을 기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편 포르투갈은 전반부터 개인기와 기동력에서 독일을 앞지르며, 적절히 2대1 패스를 주고받는 가운데 빠르고 정확하게 측면을 파고든 역습이 주효하며 거함 독일을 침몰시킬 수 있었다.
또한 라치오 듀오인, 경기 내내 수비진영을 노련하게 조율해 준 쿠투와, 3골을 몰아치며 포르투갈의 공격을 주도한 콘세이상은 오늘 경기를 승리로 이끈 최고의 수훈 선수들로 꼽을 만했다.

이번 대회에서의 독일 참패의 원인을 꼽자면 우선 세대 교체 실패로 인한 주전 선수들의 노령화를 들 수 있다. 이는 힘, 조직력, 기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독일 축구의 본래 모습과 거리가 먼 특징 없는 플레이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오늘 경기에서 후반 연속 실점을 내주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또 한가지 플레이메이커의 부재를 들 수 있다.

공수의 원활한 연결은 물론, 공격 속도와 공격 방향 등을 미드필드로부터 적절히 조절해 줄만한 팀의 리더가 없었다는 것은 이번 대회 들어 이렇다 할 득점 기회 한번 만들지 못한 독일로서는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아닐까 한다. 노장 마테우스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했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차라리 에펜베르그를 설득해서 대회에 참가시켰더라면 양상이 어떻게 변했을 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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