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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에서 경영자로 CEO는 진화해야 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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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호 24면

변대규 사장은 1960년 경남 거창. 서울대 제어계측학과 출신으로 석·박사 동료들과 함께 89년 휴맥스를 창업했다. 일반 TV에서도 위성방송·케이블방송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변환장치인 디지털 셋톱박스를 개발했다. 2010년 휴맥스의 매출은 1조52억원, 영업이익은 751억원이었다.

‘IGM과 함께하는 경영콘서트’ 넷째 주인공은 휴맥스의 변대규 사장이다. 디지털 셋톱박스 제조업체 휴맥스는 국내 벤처 1세대 제조업체 중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외환위기, IT 거품 붕괴 등 풍파를 이겨내고 이룬 값진 성과다. 21년간 벤처 신화를 지켜온 변 사장의 CEO 역할론을 들어봤다.
제가 멘토라는 이름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휴맥스라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매일 고민에 맞닥뜨리는 사람이니까요. 다만 사업하면서 늘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의견을 나눠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IGM과 함께하는 경영콘서트 ④ 변대규 휴맥스 사장 <끝>

전 기업가와 경영자를 구분해 얘기합니다. 기업가라는 사람들은 조직의 밖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밖의 변화를 읽어내고 그 의미를 해석해 사업거리를 찾고 투자를 결정해 달려드는 것, 이런 것을 기업가적 활동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니까 사업을 시작하기 전엔 누구나 기업가죠. 물론 기업가적 활동 없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지, 이런 건 기업가적 생각은 아니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햄버거를 만들어 파는 건 기업가적 활동은 아닙니다. 하지만 맥도날드는 기업가적 활동을 한다고 봅니다. 좀 더 깨끗한 환경에서 균일한 품질의 햄버거를 먹고자 하는 고객들의 수요를 읽었을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걸 충족하기 위해 공정을 표준화하고, 종업원을 교육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전에 햄버거를 만들어 팔던 사람들과는 달랐죠.

시장의 흐름 꿰뚫는 기업가적 결정
휴맥스의 경우 창업 이후 대부분의 제품이 실패했습니다. 엔지니어들이 모여 만든 회사이다 보니 우리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었거든요.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제품으로 출시하는 족족 실패였습니다. 그러다 성공한 첫 제품이 있습니다. 제품을 내놓고 광고를 했어요. 제품의 기능을 1번, 2번, 3번, 이렇게 쭉 적었지요. 그러면서 적을까 말까 했던 8번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이 8번 때문에 문의 전화를 해요. 그때 처음으로 ‘아,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8번 기능을 특화해 만든 게 자막기입니다. 사업이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시장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 사업일지도 모르겠다고요. 창업하고 5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기업가적 결정을 하게 된 것이죠.

이때 디지털 가전사업을 하자는 것도 결정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가전사업은 전부 아날로그였습니다. 컴퓨터 산업에서 만들어진 디지털 기술을 아날로그에 기반한 가전사업과 융합한 거죠. 휴맥스처럼 작은 회사는 시장에 큰 변화가 있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기존 사업자들은 변화를 위해 방향을 틀어야 하지만 우리는 그저 나아가면 되거든요. 돌이켜보면 휴맥스의 가장 중요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행히 흐름을 잘 읽고 기회를 포착하는 기업가적 행위가 성공해 회사는 성장했습니다. 1997년 140억원 하던 매출이 2001년 3000억원을 넘었습니다. 엄청나게 빠른 성장이죠. 회사는 정신없이 복잡해졌습니다. 새로운 사람도 많이 들어왔고요. 전부 성공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조직이 이상해졌어요. 경쟁력이 갑자기 사라지고요. 휴맥스가 2002년엔 이익이 1000억원 가까이 났는데, 2003년에 500억원, 2004년에 100억원밖에 안 났습니다. 2년 만에 10분의 1로 떨어졌어요.

이 단계에 이르면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럼 CEO는 관심을 밖에서 안으로 돌려야 합니다. 어떻게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것인가. 조직 문화를 재정비할 것인가, 시스템은 어떻게 새로 만들 것인가. 온통 회사 안으로 관심이 모입니다. 이게 경영자의 일입니다. 벤처 열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회사가 되면 비로소 그때 경영이 필요해집니다.

미국의 경우 주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죠. 기업가적 혁신으로 창업을 하고 성장하면 이후엔 전문경영인이 커진 조직의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그런데 한국의 기업문화는 그렇지 않아요. 전문경영인의 풀도 적습니다. 저는 경영자로서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어 고생했습니다.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고, 사람들에게 바뀌어야 한다는 걸 인식시키는 데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지식을 배우는 데도, 배운 것에 맞춰 사람들이 바뀌는 데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약 4~5년에 걸쳐 운영 혁신을 해 왔는데요, 제법 성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가→경영자→기업가의 선순환 필요
기업가와 경영자를 구분해 말씀드렸는데요, 세상의 흐름을 읽어야 하는 기업가 활동은 대물(對物)적 측면이 강합니다. 반면 조직화하고 사람들의 생각·행동을 바꾸고 보상하는 경영 행위는 대인(對人)적 측면이 강한 것 같습니다.

기업가적 활동으로 창업하고 성장했고 경영의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그럼 불행히도 그 사업은 죽어가는 사업이 됩니다. 세상의 어떤 사업도 영원하진 않습니다. 지금의 기술과 서비스는 반드시 진부해지게 돼 있습니다. 한 번의 순환을 거치면 다시 새 사업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을 보고 변화의 기회를 찾는 기업가적 활동이 또 시작되는 거죠. 하지만 처음 창업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다행히 새로운 기업가적 활동이 또 성공했다면, 역시 새로운 경영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고민이 생기고, 상황에 걸맞은 판단을 해야 하는 거죠.

여러분에게 제가 드리는 말씀이 참고는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방식으로는 될 리 없습니다. 반드시 다르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방식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워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GM(세계경영연구원·회장 전성철)은 매달 한 번 대한민국 최고 CEO가 중소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경영구루 릴레이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문의 02-2036-8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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