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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444m 역은 괴물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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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심상복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인천공항에서 대관령까지 68분이라고? 2018 겨울올림픽을 따내기 위해 유치위원회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이렇게 약속했었다. 세 번째 도전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을 게다.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 68분은 잊어버려야 한다. 수조원을 쏟아붓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화장실 갔다 온 뒤 맘이 변했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사실 올림픽 유치를 위해 IOC에 약속한 걸 모두 지키는 나라는 없다. 2006 이탈리아 토리노 겨울올림픽 때에는 공항에서 주경기장까지 1시간을 약속했지만 실제론 3시간으로 불어났다.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에도 1시간이면 된다던 공항~주경기장 이동에 30분 이상 더 걸렸다.

 68분이 아니라면 새 목표는 얼마가 돼야 할까. 이 문제를 푸는 데는 시간 못지않게 돈이 중요하다. 최소 비용에 최대 효과는 모든 경제활동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교통연구원 이장호 박사는 기존 시설과 현재 추진 중인 철도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천공항에서 서울역까지 오가는 공항철도가 있다. 가끔 이용하는데 한 칸에 대략 한두 명 탄다. 평창올림픽이 이런 애물단지도 구제해 줘야 한다. 이 박사는 용산~청량리 구간은 신호시스템을 바꾸고, 중앙선의 덕소~원주 구간은 고속화 철도로 개량하고, 원주~강릉 구간은 진짜 고속철을 깔면 국민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원주~강릉 구간도 겨울올림픽 유치와 관계 없이 이미 지난해 복선전철을 건설하기 위해 설계에 착수한 상태다. 교통연구원 추산에 따르면 기존 시설을 충분히 활용하고 계획 중인 철도를 KTX로 깔면 추가 사업비는 963억원에 불과하다. 문제는 시간이 좀 걸린다는 점이다. 인천공항에서 89분이라고 한다. IOC에 약속한 시간보다 21분 더 걸린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서울에서 대관령까지는 72분, 양호한 수준이다. 이건 논스톱을 가정한 것이어서 실제로는 더 걸릴 것이다. 이달 초 열린 평창올림픽 수송시스템 세미나에서 이 박사는 몇 가지 대안을 더 냈지만 이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6분을 줄이는 데 무려 5000억~2조원이 더 들기 때문이다.

 큰 쟁점이 하나 더 있다. 대관령에 지하 444m 올림픽역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 정도면 얼마나 깊을까. 국내서 가장 높다는 63빌딩 높이가 249m다. 그걸 땅속으로 박고, 다시 거의 그만큼 더 내려가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과잉’이다. 모자람보다 못한 넘침의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랜드마크가 되겠다는 욕심도 끼어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건설비는 엄청날 것이지만 이용도는 아주 낮을 것이다. 고층 빌딩은 꼭대기 전망대가 인기지만 땅속은 아니다. 빨리 지상으로 올라갈 생각부터 하지 거기서 노닥거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도 나면 지하감옥 신세를 면치 못한다. 산악철도로 승객을 지상으로 실어낸다는 아이디어도 있다. 첨단 환기시설을 갖추겠지만 화재라도 나면 큰일이다. 유지·관리 비용이 장난이 아닐 것이란 말이다.

 ‘해피 700’은 평창군의 슬로건이다. 해발 700m가 사람 살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자랑하는 문구다. 그런데 거꾸로 땅을 파고 들어가겠다니 모순도 한참 모순이다. 건설공법이 발달해 짓고자 하면 못 지을 것도 없을 게다. 땅을 깊이 파다 보면 뜨끈뜨끈한 온천물이라도 나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올림픽역은 괴물이 될 공산이 크다. 2002월드컵을 위해 10개 도시에 1조8100억원을 들여 지었던 축구장이 대회가 끝난 뒤 애물단지가 됐다. 1회성 시설물이 아니라면 중요한 건 대회 이후다. 세금으로 건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올림픽 뒤의 이용도와 효율성을 따져야 한다.

 올림픽역은 지상에 만들어야 한다. 땅속 깊은 곳에 역을 만들면 지상까지 수송하는 게 우선 골치고, 거기서 경기장까지 다시 셔틀버스나 모노레일을 이용해야 한다. 조직위 계획은 진부에 지상역을 만들고, 용평과 가까운 곳에 문제의 역을 짓는다는 것이다. 진부에서 용평까지는 불과 12㎞다. 고속철도는 완행버스가 아니다. 이 짧은 거리에 감당하기 어려운 지하역을 또 만드는 건 난센스다. 진부에 올림픽역을 만들고 여기서 경기장까지 승객을 실어 나르면 된다.

 지하 444m 역은 사치다. 사치는 돈이 넘칠 때나 하는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 재정이나 강원도나 평창의 여력으론 어림없다. 개념없이 지은 알펜시아 리조트는 아직도 분양률이 20%에 불과하다. 하루 이자만 1억원을 넘어 강원도 살림을 거덜 내고 있다. 대관령 지하역은 백지화해야 한다.

심상복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