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 행사장에 온 일본 동인 'Great Escape'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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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6월 3일∼4일 양일간 개최되었던 아카 코믹페어 행사장에서는 많은 동인들 가운데에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GREAT ESCAPE'라는 동인명으로 참가한 ME-CHAN님. FALCOM社의 유명게임 〈이스 이터널〉의 캐릭터 디자이너로 활동한 인물로 이번에 'UNDO'라는 이름의 회지를 들고 한국의 동인지 행사장을 찾은 것. 완역에 가까운 정식 한국어 번역본을 직접 일본인이 와서 판매한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어서 관심도가 더했다.

좋아하는 게임이자 판매하고 있는 동인지의 소재인 〈페르소나〉의 코스튬을 차려입고 판매전에 열을 올리고 있던 그를 인터뷰했다. '낭만시대'의 LionMama님께서 통역을 도와주었다.

- 'Great Escape' 라는 동인명의 유래는?

"일본에서 활동중인 모 가수의 노래 제목이기도 합니다. 〈페르소나〉라는 게임 자체가 상당히 마이너적이어서 메이져에서 '대탈출(Great Escape)'한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 일본의 동인으로써 한국의 동인지 판매전에 참여한 느낌은 어떤가요?

"일본의 행사에 비해서 규모는 작지만 비교적 넓은 장소에서 이러한 행사를 여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디스플레이(각 부스를 꾸미는데 쓰이는 일종의 간판)가 일본보다 멋지네요."

- 게임 〈페르소나〉의 코스튬을 하고 함께 부스를 지키고 계신 분들이 계신데, 모두가 같은 팀인가요?

"아니, 개인 참가이고 함께 온 친구 한 명을 제외한 다른 분은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 된 한국분입니다. 일본에선 개인지 활동이 중심인데 한국 행사에선 그룹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보였습니다."

- 〈페르소나〉라는 게임은 한국에는 그다지 알려져있지 않은 게임이어서 몇몇 매니아분을 제외하면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은 편인데, 일본쪽에서의 〈페르소나〉의 인기는 어떤가요?

"일본쪽에는 팬층이 꽤 있지만, 아무래도 다른 게임들에 비해선 마이너 성향이 짙어요."

- 좀 짖궂은 질문입니다만, 회지를 보면 난죠라는 캐릭터에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계신 걸로 보이는데 난죠군을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하하하! 아무래도 한가지만 알지만, 또 알고보면 어리숙한.. 강한척 하지만 여리면서 인간적인 면이 있는 그런 점이 좋아요."

- 난죠군과 맺어주고 싶은 '여성 캐릭터'가 있나요?

"노말 말인가요~! 음- 긴 머리를 묶고 있는 에디라는 캐릭터와 맺어줄 수 있으면 좋겠네요."
(동인녀들에게 있어 보통 커플링은 남성×남성으로 이루어지는 야오이물인 경향이 강하고 'UNDO'도 예외는 아니다. 때문에 그들에게 '노말'은 남자와 여자를 맺어주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인다)

- 한국 행사에 오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LionMama님('낭만시대'라는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프리 일러스트레이터)과의 1년여 동안의 친분으로, 결과적으로는 LionMama님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 일본 동인들과 한국 동인들의 교류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돈과시간문제가 있기때문에 공동작업은 어렵겠지만, 와서 보니까 너무 즐겁고 해서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일본 동인들의 작품들을 접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직접 참여의 경우 번역이 되지 않은 상태의 작품을 볼수 있으며, 몇몇 동아리는 무단으로 회지를 들여와 식자만 붙여서 판매하는 악덕적인 행태를 보이곤 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GREAT ESCAPE' 의 경우를 보면, 일단 국내 동인분과의 친분이 이어져 한국의 행사에 참여했으며 회지 또한 충실히 번역하여 내보임으로써 최초의 '제대로 된 참여'의 케이스가 되었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러한 교류가 앞으로 원활해질 수 있다면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경우 뿐만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역시 동인다운 면모가 넘쳐흐르고, 한국의 행사에 대한 감상도 솔직히 풀어내주는 모습을 보여준 ME-CHAN님. 앞으로도 이러한 행사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얼굴이 되길 기대해마지 않는다. 아울러서 이러한 교류가 쌍방향으로 확대되는 것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