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열매, 초콜릿〉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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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신들의 음식 나무 [1]

꼬투리는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4~5개월이 걸리고, 완숙되는 데에 또 1개월이 걸린다. 꽃은 1년 내내 수정이 이루어지며 꼬투리도 계속해서 익지만, 꼬투리는 완숙된 이후에도 여러 주 동안 기둥에 붙어 있고, 수확 후에도 1주일 정도 더 달려 있으며, 보통은 1년에 두 번 수확할 수 있다.

그러나 최신 기술의 도입으로 이제는 1년 내내 안정적으로 수확할 수 있다. 수확할 때에는 엽침이 상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엽침에서 계속해서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기 때문이다.

꼬투리가 열리고 콩을 싸고 있는 과육을 빼낸 뒤, 대개 4단계를 거쳐 이른바 카카오 콩이 만들어진다. 그것을 갈은 것이 바로 초콜릿이다. 4단계라는 것은 발효·건조·불에 덖기·키질이다. 기술 수준이 진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순서는 적어도 3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고 현재도 똑같다.

종자와 과육의 발효에 필요한 시간은 종에 따라 차이가 있다. 원래 크리오요종(중앙 아메리카산 변종)의 콩은 1~3일, 포라스테로종(남아메리카산 변종)의 콩은 3~5일에 걸쳐 발효시키지만 요즘은 모두 5~6일 동안 발효시키고 있다. 첫째 날에는 다양한 화학적, 생물학적 작용이 동시에 일어난다.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종자에 붙어 있던 과육은 흐물흐물하게 녹아 떨어진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일단 발아를 시킨 다음, 고온과 점점 높아지는 산도에 의해 싹이 죽게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발아하지 않은 콩으로 만든 초콜릿은 독특한 풍미를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날까지는 콩 더미를 때때로 뒤섞어 주어야 하고, 섭씨 45도에서 50도 사이로 온도를 유지시켜야 한다. 발아한 뒤 며칠 동안 이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초콜릿 맛이 나지 않는 초콜릿이 만들어진다. 발효는 무엇보다도 콩이 지닌 떫은 맛을 완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꼬투리를 찾는 동물들이 콩을 먹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떫은 맛 때문일 것이다.

발효가 완료되면 건조 과정으로 들어간다. 전통적인 방식은 콩을 멍석이나 바구니 위에 널어 햇빛에 말리는 것이다. 이 과정은 날씨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2 주가 걸린다. 그 동안 콩의 무게는 반 이하로 떨어지지만, 발효가 지속됨으로써 효소 활동은 시작된다.

덖기는 좋은 맛과 향을 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보통 70분에서 115분 동안 덖는데, 초콜릿은 섭씨 99도에서 104도, 코코아 분말은 섭씨 116도에서 121도가 적당한 온도다. 덖기에 의해 다양한 화학 변화가 이루어지고 수분이 증발한다. 또한 콩은 짙은 갈색을 띠고 쉽게 부서지게 되며 떫은 맛은 없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키질을 하여 필요없는 쭉쟁이를 제거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 콩을 갈면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인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물질을 상인들은 “카카오 원액”이라고 부른다. 옛부터 재배되어 온 다른 식물과 마찬가지로 카카오에는 많은 품종이 있다.

이러한 품종들의 분포는 ─야생 카카오(아직까지 존재한다면)의 분포와 마찬가지로 ─이 식물의 원산지나 재배하게 된 경위, 또 그 결과 인류와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되었는가를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1964년에 식물학자 호세 쿠아트레카사스가 발표했던 테오브로마속의 재분류에 의하면, 이 속에는 22가지 종이 있고 그것들은 6개의 아속으로 크게 구별된다. 쿠아트레카사스는 테오브로마속(결코 테오브로마 카카오라고는 부르지 않는다)이 인간이 시베리아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오기 훨씬 이전에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 동쪽 사면에서 진화했다고 한다.

22개 종 가운데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테오브로마 카카오와 테오브로마 비콜로 두 가지만이다. 나머지 20개 종은 아마존 강 유역과 에콰도르에서 콜롬비아 북부, 파나마,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그리고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태평양 연안과 남아메리카 대륙의 북쪽 해안, 곧 카리브 해 연안에 분포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재배종인 테오브로마 비콜로는 카카오의 선조는 아니지만, 멕시코 남부에서 남쪽으로 열대 볼리비아, 브라질까지의 지역에서 가정 원예용 작물로서 재배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이 열매를 “파탁스테”라고 부르며, 음료수의 원료 또는 아주 비싼 카카오의 혼합물로 사용한다. 쿠아트레카사스는 확실하게 야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무의 표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 그것의 원산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다.

여기서는 어떻게 야생으로 돌아갔느냐보다는 어떻게 야생종임을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데 이것은 결국 식물학자가 판단해야 할 일이다. 열매를 목적으로 재배한 나무는 대개 야생종보다 큰 열매가 열린다. 그래도 나무의 수명이 더 길고, 특히 열대 지방에서는 재배 농가가 없어져도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경우가 있다.

열악한 조건 아래서 생존했던 나무나 그 자손이 빈약한 열매를 조금이라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연구자들에게 수수께끼다. 연구자는 나무의 역사를 추측하고, 그 추측에 따라 가설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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