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향

중앙일보

입력

그윽한 향기가 나는 사랑 이야기...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군에서 제대한 찬우. 오랜 친구인 유라를 찾아가 반가운 해후를 하는데, 그는 자신을 기다리던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선희라는 여자에게서 온 편지...

입대 전, 호남선 상행 열차에서 만났던 소녀, 선희. 자신을 대학생이라고 소개하고, 다시 만나 분식집, 카레이스 경기장에서 함께 했던 기억들... 찬우는 선희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바로 그녀에게서 온 글이다.

그런데 편지는 뜻밖에도 선희의 유서였다. 입대 전날, 선희의 현실의 알게된 찬우에게 선희가 남긴 것은 한 장의 편지... 세상에서 처음으로 사람의 따스함을 느꼈다는 선희가 자신의 유골을 고향 땅에 뿌려달라는 부탁이 담긴 단 한 장의 편지뿐이다.

찬우의 기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새벽기차를 타고, 선희의 고향을 찾아 나선 찬우는 만감이 교찬하다. 언젠가 선희를 따라가 봤던 고향은 참 멀고도 먼길이었다.

찬우는 어느새 선희와 함게 와보았던 대홍사 자락의 산장에 이르게 된다. 시간이 정지해버린 듯한 그곳의 분위기에 매료되던 찬우는 묘한 분위기의 한 여인과 만나게 된다.

어두운 기억 속의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진경이라는 이름의 그 여인은, 한때 그녀의 새로운 희망이기도 했었던 사내 밑에서 자신의 운명을 자학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리뷰

30대 신예감독들이 '판치는' 영화계에서 자신의 존재가 잊혀질 세라 드문드문 명함을 내미는 '노감독'들이 몇 있다. 우리 영화 반세기를 이끌어온 원로 가운데 한사람인 김수용 감독도 그 축에 끼는 인물이다.

그가 자신의 109번째 영화 〈침향〉을 관객들 앞에 내놓은 것도 영화계에 거세게 불고 있는 세대교체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외길 영화인' 자리를 지켜 내려는 몸짓으로 비친다.

〈침향〉은 1986년작 〈허튼소리〉가 검열파동에 휘말리자 메가폰을 집어던진지 14년만에 국내 영화판에 명함을 내민 그의 신작이다.

그의 대표작 〈만추〉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김지헌씨가 이번에도 시나리오를 맡았고, 〈서편제〉〈춘향뎐〉의 촬영감독인 정일성씨도 동참해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서로 다른 만남과 이별속에서 순수한 영혼이 내뿜는 인간의 향기, 사랑의 향기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침향〉은 천박한 일회용 사랑이 넘실대는 오늘의 세태를 질타하고 있다.

"산 사람 몸에서도 악취가 나는 이유는 색(색), 곧 물질에 대한 탐욕때문이지..."라는 영화속 노승(노승)의 설법에서도 이 영화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대홍사 자락의 우거진 대나무숲과 호수의 영상은 정일성 촬영감독의 기예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치악산, 속리산, 영취산 통도사, 해남 구륜산 등의 아름다운 자연미도 한폭의 풍경화처럼 스크린에 펼쳐져 있다.

테크노 여전사 이정현이 지금까지의 강렬하고 화려한 이미지에서 탈피,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며 진정으로 따뜻한 사람냄새를 그리워하는 순수한 여인으로 출연했다. 10일 개봉.(서울=연합뉴스) 이명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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