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평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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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국 대표인 리차드 굿윈이 주선한 만남이 몬테비데오에 있는 브라질 대표의 숙소에서 열렸는데 주된 의제는 역시 경제문제였다. 여기서 굿윈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미국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게 필요한 자금을 댈 테니 쿠바에 대한 소련의 원조를 이 돈으로 대체하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쿠바를 서방의 블록 안에 남겨두겠다는 말이었다. 사실 귀가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으나 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이 제안을 기억해 두는 것으로 그치기로 했다.

8월 16일, 독일에서 공식적으로 베를린 장벽이 봉쇄된 그날, 체는 몬테비데오의 매서운 오후 추위 속에서 중남미가 당면한 적나라한 현실을 고백했다.

"1인당 2.5퍼센트의 성장을 가정할 때 미국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선 어림잡아 1세기는 족히 걸릴 것입니다. 그리고 산업화된 국가들의 발전과정을 미루어볼 때 소위 저개발국가들이 그와 같은 비율을 견지한다고만 하여도 선진국들의 소득증가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백 년은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국제연합 경제회의와 국제통화기금 간의 해묵은 논쟁이 재발된 후, 체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이곳에 찬란한 승리 같은 것은 없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체 일행을 환영하지 못하도록 아르헨티나 대통령 프론디지(Frondizi)는 세 가지 단서를 달았다. 회담은 외교적인 경로를 통해 요청되었으며 순전히 공식적인 행사를 위해 비자가 나왔을 뿐이다.

따라서 이 여행은 비밀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조건은 너무도 완벽하게 지켜졌다. 체가 마지막 시간에 행선지를 바꾸는 바람에 귀환길의 쿠바 대표단 전체가 몰살할 뻔한 비행기 사고로부터 용케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 사건의 내막은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체의 목숨이 그 목표였을 것이라는 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변함없는 올리브그린색 군복 차림으로도 체는 진정한 정치가의 외관으로 탈바꿈하곤 했다. 그는 의학 수업을 받았던 그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과거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올리보스 관저에서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체는 줄곧 상대방의 의중을 떠보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프론디지 대통령은 이웃인 브라질의 자니오 콰드로스(Janio Quadros)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내심 이런 계산을 하고 있었다.

굿윈이 상기시킨 바대로 아르헨티나가 미국과 쿠바 간의 중재 역할을 제대로만 수행한다면 그로부터 떨어지는 떡고물은 무시 못할 양일 것이었다. 체는 이런 속셈을 품고 있는 프론디지와는 더 이상 대화가 필요없다고 판단하고 형식적인 조약에 서둘러 서명하였다.

귀국길에 들른 브라질의 리오에서 만난 콰드로스 대통령과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얻었다. 사실 두 나라의 대통령이 쿠바를 미국의 영향하에 남겨두고 싶어했던 건 나름대로 분명한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체로서는 남미의 두 강대국 대통령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행운을 가져다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체와의 회담이 있고 난 후 여드레 안에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는 비운을 맛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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