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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민단체, 남 비판하듯 스스로 검증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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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호 02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길목에서 시민단체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논란의 한복판에는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박원순 변호사가 서 있다.

무소속 강용석 의원은 박 변호사가 주도하는 ‘아름다운재단’이 대기업 11곳으로부터 10년간 150억원을 기부 받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 대기업은 참여연대 부설연구소 ‘좋은기업 지배구조 연구소(CGCG)’가 우선감시대상으로 지정했던 50개 기업 명단에 들어 있다. 간단히 말해 참여연대가 대기업들을 때리고, 아름다운재단이 기부금을 받는 물밑 삼각거래를 했다는 주장이다. 나눔 운동을 펼쳐온 아름다운재단은 2000년부터 총 928억원을 모금했다. “그 돈으로 수만 세대의 단전·단수 빈곤층 가구를 도왔고 싱글 맘들의 희망가게 창업 등을 지원했다”고 박 변호사는 반박한다.

‘대기업 기부금’ 논란을 지켜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한국에서 시민단체가 대형 사업을 추진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이 있다. 기업으로서도 사회적·윤리적 책임을 다하면서 소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시민단체들을 지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가성이다. 일부 의혹대로 대기업의 기부가 사실은 울며 겨자먹기식이었고 공격을 피하려는 방편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게 공무원들의 뇌물 수수와 뭐가 다른가. 혹시 로빈 후드처럼 부자들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썼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법치주의는 설 땅이 없다. 그런 사고방식은 자칫 ‘내 행동은 모두 옳고 상대방은 나쁘다’는 독선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박 변호사가 주도했던 정치인 낙선운동도 어찌 보면 그런 사고방식과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지난 20여 년간 시민단체를 비롯한 비정부기구(NGO)들이 해온 역할과 공로를 평가한다. 민주화와 빈곤층 지원, 환경·인권·복지·여성·소비자 보호 등 정부가 외면하기 쉬운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여론을 환기한 공이 크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시민단체 숫자가 5000여 개니, 1만 개니 하는 게 현실이다. 한 사람이 10여 개 단체에 이름을 걸쳐 놓은 경우도 많다. 워낙 시민단체들이 난립하니 활동가들은 대부분 월 100만∼200만원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민운동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너무 빈곤하면 각종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기업의 뭉칫돈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라면 과연 존립의 정당성이 있는 것인지 묻게 된다.

시민단체들은 상식과 도덕성을 앞세워 대기업과 정부를 비판해왔다. 남을 비판하려면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 박 변호사의 정치인 변신을 계기로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의 도덕성 역시 엄밀한 검증의 잣대 위에 세워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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