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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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오 마사유키는 일본에서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를 만족시키는 드문 경우다. 데뷔작에서 〈쉘 위 댄스〉에 이르기까지 수오 감독은 적절한 유머와 감동을 뒤섞은 영화들로 관객들의 높은 반응을 얻었다. 평도 좋은 편이다. 얼마 전 방한한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난 1년에 영화 한편 정도를 보는, 보통 사람을 위한 영화를 만든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마도 감독의 작품세계에 관해 이보다 더 적절한 설명은 없을 것 같다. 그는 서민적이면서 일반관객이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볼 수 있는 영화들만 전문으로 만든다.

수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은 특이했다. '핑크영화', 그러니까 싸구려 에로영화로 연출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현재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은 싸구려 핑크영화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 〈큐어〉의 구로사와 기요시가 좋은 예. 에로영화의 선정성과 타협하면서, 한편으로 자신들이 찍고 싶은 대로 제작사와 큰 마찰없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수오 감독 역시 핑크영화 감독으로 연출자 생활에 발을 디딘다. 그의 데뷔작은 〈변태가족, 형의 신부〉다.

이 영화엔 한 부부와 그들이 모시고 사는 시아버지 등의 가족이 등장한다. 섹스가 흘러 넘치고 근친상간이 범해지면서 어느새 가족관계는 서서히 균열되고 붕괴하기 시작한다. 〈변태가족, 형의 신부〉는 일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영화가 뛰어나서? 아니다. 일본 고전영화 거장인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그대로 카피한 탓에 시선을 끈 것이다. 땀방울이 흐르고 신음소리가 난무하는 섹스장면을 제외한 영화의 모든 장면은 오즈 영화에서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수오 감독은 당시 평론가이자 학자인 하스미 시게히코에게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는데 그의 "더 이상 새로운 영화는 없다"라는 신념을 자신의 영화관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더욱 대중적인 영화로 발길을 옮긴다. 이후 이어진 영화들은 〈팬시 댄스〉와 〈시코 밟고 말았다〉라는 두 편의 영화다. 두 작품 모두 가벼운 코미디물. 특히 〈팬시 댄스〉 같은 영화는 만화 원작을 화면으로 옮긴 경우이기도 했다. 아버지로부터 직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탓에 강압적으로 수도생활에 들어가는 요헤이라는 청년이 겪는, 기상천외한 소동을 다룬 것이다. 원래 록 음악에 심취해있다가 갑작스레 도를 닦아야 하니 그 생활이 결코 쉬울 리가 없다.

가끔씩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영화를 보면 TV 드라마와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시코 밟고 말았다〉 같은 영화가 그렇다. 운동신경도 없는 젊은이들이 대학 스모부에 모여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배운다는 줄거리. '스모'라는 전통적인 운동에 통 적응하지 못하는 청춘들이 엮어내는 유쾌한 코믹물이다. 영화감독 겸 배우인, 그리고 〈쉘 위 댄스〉에서도 대머리 샐러리맨을 연기한 나케나카 나오토 등이 출연했다. 이 영화에 이르기까지 수오 감독은 흥행과 비평, 모두 그럭저럭 좋은 성적을 유지하면서 입지를 구축해갔다.

〈쉘 위 댄스〉는 수오 감독의 최고 성공작이다. 미국에서 공개되어 이제까지 공개된 일본영화 중에서 가장 높은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 이해가 된다. 〈쉘 위 댄스〉에서 일상에 지친 남성들은 춤의 세계를 통해 소심함과 자기환멸에서 탈출한다.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이다. "나와 춤출까요?"라는 대사는 이 영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딱딱한 스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즐기면서 사는 게 인생의 가장 값진 덕목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영화는 가벼운 엔터테인먼트와 애잔한 로맨스, 그리고 가족 드라마의 성격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다. 일본의 전통적인 서민 드라마가 할리우드적인 오락성과 만나 훌륭하게 개화한 셈이다. 일본 상업영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쉘 위 댄스〉가 국내 관객에겐 어떤 반응을 얻게 될까. 흥미진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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