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oney&] 연 6~9% … 어디 없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8월 18일. 1900선을 목전에 두고 출발한 코스피 지수가 하락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가가 단기 바닥을 찍고 반등하는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하락폭은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삼성생명과 한화가 충분히 빠졌습니다. 이만하면 할 만 합니다. 주가연계증권(ELS) 설정 들어가겠습니다.” 김모(55)씨에게 걸려온 전화다. VIP투자자문 김민국 공동대표였다. 김씨는 7월 친구로부터 이 자문사가 파는 ELS 얘기를 들었다. 이곳은 가치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자문사다. 이들은 절대 손해 보지 않을 정도로 값이 싼 가치주를 골라 고객 맞춤형으로 ELS를 설계·판매한다. 최준철 공동대표는 “증권사는 ‘기성복’을 팔지만 우리는 ‘맞춤복’을 판다”며 “ELS 투자에서 중요한 건 손해 보지 않을 것 같은 종목을 고르는 건데 증권사에 파는 공모 ELS는 수익률을 높이려다 보니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다시 말해 고평가된 종목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삼성생명과 한화 주가가 충분히 싸지자 VIP투자자문이 김씨를 포함한 고객들에게 전화를 돌린 것이다. 이튿날인 19일, 삼성생명·한화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만기 3년, 6개월마다 조기상환, 연 17.7%짜리 ELS가 설정됐다. 원금을 지킬 수 있는 마지노선(녹-인 베리어)은 설정일 주가의 55%다. 곧 주가가 지금보다 45% 넘게 떨어져야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코스피 지수가 지난주 금요일 100포인트 넘게 폭락했지만, 현재 삼성생명 주가는 설정일 당시보다 높다. 한화 주가도 10%도 안 떨어진 상태다. 김씨는 이 상품에 1억원을 선뜻 넣었다.

 3년 전 김씨의 선택은 달랐다. 수익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상품만 찾았다. 연 21%, 1년 만기, 현대중공업과 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에 투자했다. 주가가 반 토막만 나지 않으면 수익이 나는 구조였다. 초고금리 예금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그해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수익은커녕 원금조차 까먹었다. 그래서 이번엔 수익률보다는 얼마나 안전한가를 먼저 따졌다. 기초자산은 인기주가 아니라 가치주로, 그것도 쌀 때, 전문가들이 골라주는 그런 ELS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금리+α’ 투자법

 김씨 같은 투자법이 요즘 부자들의 대세다. 시장이 불안해지자 투자 성향이 ‘보수화’ ‘우경화’ 됐다는 얘기다.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이 우선이다. 지난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자문형랩에 자금이 쏠렸던 것과 정반대 흐름이다. 특히 부자들은 대박 욕심을 버렸다. 자산 지키기가 먼저다. 본지가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고객을 둔 은행·보험·증권사 PB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일자 참조)에서도 그랬다. 이렇게 되자 ELS 시장도 판도가 바뀌었다. 기초자산으로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같은 인기주는 ‘찬밥’이다. 기초자산은 ELS의 수익률과 위험도를 결정하는 데 ‘기초’가 되는 요소다. 이들 종목보다는 주가 흐름이 안정적인 가치주나 급락 위험이 덜한 코스피200 등 지수가 각광받는다. 지수형 ELS의 경우 발행규모가 7월 6700억원에서 8월 1조2200억원으로 늘었다.

원금 손실 가능성을 최대한 낮춘 상품도 늘었다. 얼마 전엔 지수(코스피200)를 기초자산으로 하는데도 원금을 지킬 수 있는 녹-인 베리어를 설정일 지수의 50%로 한 ELS도 나왔다. 예를 들어 현재 지수가 1800이라면 900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원금 까먹을 일이 없다는 의미다. 보통 과거 지수형 ELS의 녹-인 베리어는 현 지수의 60~70% 수준이었다.

 아예 ‘극우’로 전향한 이들도 있다. 원금은 절대 까먹을 수 없다는 극단적 보수 투자자들이다. 이들을 겨냥해 수익률 눈높이를 한 자릿수로 낮추는 대신 원금보장을 조건으로 내건 상품이 늘었다. 7월 전체의 18%에 그치던 원금보장형 ELS는 8월 비중이 두 배(36%)로 증가했다. 8월 급락장에서 삼성전기·LG디스플레이·LG전자·한진해운·대우증권·하이닉스·STX팬오션·LG이노텍·STX조선해양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가 원금을 까먹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서다.

 다른 금융상품도 마찬가지다. 트렌드가 비슷하다. 자문형랩을 필두로 한 고위험 고수익 상품에 ‘좌편향’된 흐름이 이제는 저위험 저수익 상품으로 옮겨가고 있다. 무위험에 가까운 은행 정기예금(이달 초 기준 국민·신한·우리은행 등 9개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4.05%)은 물가상승률(한국은행 예상치 4%) 수준이다. 사실상 제로 금리라는 얘기다. 때문에 약간의 위험을 더해 ‘+α’ 수익을 추구하는 상품들에 관심이 쏠린다.

 국고채는 수익은 예금과 비슷하지만 분리 과세가 가능하기 때문에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인 부자들 사이에 인기다. 특히 ‘물가연동국채’가 그렇다. 10년 만기로 발행되는 이 채권은 액면가(원금)가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따라 상승한다. 예를 들어 1억원어치를 샀는데 다음 기준일 CPI가 5% 오르면 원금이 1억500만원이 되고 여기에 이자가 2.75% 더 붙는 식이다. 세금이 붙는 이자가 아니라 원금이 오르는 구조여서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삼성증권 윤형원 SNI강남파이낸스센터 PB는 “물가상승률이 3.5%라면 연 6.1% 수익이 나오고 분리 과세도 가능한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고객은 8월 급락장에서 주식을 일부 정리하고 물가연동채를 7억원어치 샀다”고 전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험 가운데선 증시 활황기에 인기를 끌었던 변액보험보다는 고정 이자를 주는 저축성보험으로 투자의 축이 옮겨가는 추세다. 현재 저축성보험의 공시 이율은 5% 선이다. 10년 이상 가입하면 비과세 혜택도 준다. 금리는 이보다 조금 낮지만(4.5%) 매달 월급 식으로 돈이 나오는 즉시연금보험 또한 인기다. 최근 가입액이 1조원을 넘어섰다. 올 들어 월평균 1000억원 이상 보험료가 들어오고 있다. 생명보험사 상품 중 납입보험료 기준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보험이 됐다.

 한 자리 수익에 만족 못하는 이들은 조금 더 ‘위험’한 걸 찾는다. 펀드가 그렇다. 대신 시장에 완전히 노출된 상품(일반 주식형 펀드)보다는 ‘버퍼(완충 장치)’가 있는 상품을 고른다. 절대수익추구형 펀드나 퀀트 펀드, 사모형 공모주 펀드 등이 지금 부자들의 망원경에 들어와 있다.

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