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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기자들 곳곳서 맹활약

중앙일보

입력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힘있는 문체, 사회비리부터 주변 이웃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눈으로 보고 발로 쫓아 글을 써 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기자다. 다소 묵직해 보이는 이 직업, 어른들만의 세계가 아니다. 20일 청와대 연풍문 앞에서 만난 청와대 어린이 인터넷 신문‘푸른누리’ 어린이 기자들은 “안녕하세요, ㅇㅇㅇ기자입니다”라며 자신을 ‘기자’라고 당당히 밝혔다.

대통령 내외부터 대중스타까지 인터뷰 척척

 박재원(서울 충암초 6)정최창진(서울 교동초5)군과 김세경(서울 등마초 6)최리아(서울 길음초 4)양은 한손엔 취재수첩을 들고, 다른 손으로 명함을 건넸다. “명함도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연하죠. 취재하러 다니려면 꼭 필요하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푸른누리 어린이 기자단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청와대가 기자증을 발급한 어엿한 기자다. 2008년 1073명으로 시작해 현재 7477명이 활동한다. 해외 거주 학생도 34개국에서 235명이 참여하고 있다.

 올 3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3기 기자들이 서울부터 독도, 판문점, 제주도까지 전국을 누비며 취재한 기사 수는 1만7523건에 이른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 영국스페인 주한대사와 같은 정관계 인사, 김연아김제동조수미양준혁과 같은 톱스타와의 인터뷰도 척척 해냈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인 박군은 “서울국제모터쇼를 취재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며 “기자임을 당당히 밝힌 후 차 내부도 살펴봤다”고 자랑했다. 정최군은 “영재교육원을 다니면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영재교육 전문가인 서울교대 권취순 교수님을 인터뷰하면서 들었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좋아했다. 어린이 기자단 활동이 자신의 관심분야에 맞는 진로적성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셈이다. 푸른누리 민지숙(44) 편집기획팀장은 “어린 학생들이기 때문에 교육적 효과에 초점을 많이 둔다”며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인터뷰 대상자 섭외를 돕고, 탐방기획기사는 체험활동 위주로 구성한다”고 말했다.

 푸른누리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기자를 꿈꾸게 된 학생도 많다. 최양은 “원래는 의사가 꿈이었는데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기자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양은 푸른누리 기자단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 기자단, 서울시 식품안전시민기자까지 기자직함을 4개나 갖고 있다. 기자단 내에선 가장 어린 학년이지만 말투눈빛에선 중견기자 느낌이 날 정도로 빈틈이 없다. 김양은 기자단 내에서 현장 밀착취재를 잘하기로 유명하다. 길을 걷다가 취재거리가 될 만하다 싶으면 곧바로 취재를 시작한다. 김양은 “항상 기사거리를 찾다 보니까 평소 쉽게 지나쳤던 일들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됐다”며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을 만큼 눈이 예리해졌다”고 했다. 스스로 기획하고 마감일자에 맞춰 기사를 쓰는 과정이 관찰력·계획성·책임감을 길러준 경우다.

관심 분야에 맞춘 특화된 기자단 활동도

 최근엔 학생들의 관심분야에 초점을 둔 특화된 기자단 활동도 늘었다. 평소엔 경험하기 힘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고, 글쓰기 실력은 물론 사회성행동력을 길러주는 교육효과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3월 어린이박물관 어린이기자단 1기를 모집했다. 시작 단계라 30명으로 인원은 적지만 고대사·한국사 관련 특강과 문화재 탐방처럼 문화·역사에 특화된 취재활동을 할 수 있다. 국토해양부 어린이 기자단도 눈에 띈다. 5월에 초등 4~6학년을 대상으로 1기생 100명을 선발했다. 인천공항아라온호(한국 최초의 쇄빙연구선)KTX와 같은 국토해양현장체험을 할 수 있다.
 
 국토해양부 어린이 기자단 1기 엄세현(서울 돈암초 4)양은 “평소 여행체험을 좋아해 지원했다”며 “7월에 일어난 항공기 추락사고를 보고 비행점검센터를 직접 섭외해 취재했었다”고 자랑했다. 엄양의 어머니 김선정(38·서울 돈암동)씨는 “첫 인터뷰 때는 머뭇거리던 아이가 지금은 어디를 가도 움츠러들지 않고 묻고 싶은 걸 묻는다”며 “기자활동을 하면서 사회성리더십을 갖췄다”고 말했다. 과학자가 꿈이라면 과천과학관 사이언스리포터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이달 초 100명의 1기 기자들이 출범식을 가졌다. 과천국제SF영상축제위원회 윤성운 홍보수석은 “영상축제 기간 동안 미국어린이 기자 20명과 공동취재를 하게 된다”며 “축제에서 다뤄지는 다양한 과학 주제도 취재하면서 글로벌리더로 성장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과천과학관은 올해 영상축제를 시작으로 사이언스리포터를 연중 운영할 계획이다. 유명 과학자 인터뷰, 과학체험시설탐방, 과학실험과 같이 과학에 특화된 경험을 할 수 있다.

 중·고교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미디어종합체험프로그램도 인기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전국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청소년방송단을 운영 중이다. 현재 전국 7000여 명의 중고교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참여에 제한은 없다. 회원으로 가입한 뒤 시기별로 올라오는 체험프로그램에 취재계획을 제출하면 프로그램별로 선발을 거쳐 기자로 활동할 수 있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학생기자단, 서울드라마어워즈 학생리포터가 대표적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이강호 연구원은 “미디어체험은 요즘 강조되는 창의적 체험활동으로도 적합하다”며 추천했다.


[사진설명] 박재원(왼쪽)정최창진군과 김세경(왼쪽)최리아양이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취재경험을 얘기하며 웃고 있다.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사진="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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