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책봉은 상하 관계 아닌 필요에 의한 의례적 성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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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호 04면

사상 처음으로 출간되는 ‘동아시아사’ 교과서(사진)의 저자들은 자국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최대한 객관적 기술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한다. 개별 국가의 역사를 단순 취합한 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을 하나의 역사 단위로 보고 기술한 지역사란 관점에서다. 따라서 기존의 한국사나 세계사 교과서에서 볼 수 없는 표현이나 내용이 여러 대목에서 눈에 띈다.

‘동아시아사’ 교과서 어떤 내용 담겼나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을 ‘난(亂)’이 아닌 ‘전쟁’으로 표현한 것이 대표적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격(格)을 깎아내리고 싶은 심리가 은연중에 담긴 표현이지만, 개별 국가를 초월한 입장에서 보면 대규모의 국제 ‘전쟁’이었다는 게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분로쿠·게이초의 역(文祿·慶長の役)’이라 부른다. 일본어 사전에 역(役·에키)은 전쟁의 동의어로 나온다. 또 일각에서 사용되는 ‘조선출병(出兵)’이란 용어에는 침략의 성격을 희석시키고 대륙 진출로 미화하는 의미가 담길 수 있다. 중국에서는 ‘항왜원조전쟁’이란 표현을 쓴다. 이는 일본에 맞서 조선을 도운 전쟁이란 의미다. 6·25 참전을 ‘항미원조’라 부르는 것을 연상시키는 이 용어에는 ‘조선에 은혜를 베풀었다’는 의미가 강조돼 있다.

이 밖에도 동아시아사로서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기술이 있다.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란 단원에서는 조공·책봉 관계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상세히 설명하고 동아시아 지역에 나타난 독특한 외교 형식으로 해석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조공·책봉 관계는 종주국과 속국의 상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서 만들어진 의례적인 성격이 강하였다”고 서술했다. 천재교육 교과서는 “조공과 책봉이 한(漢)의 직접 지배나 실제적 간섭을 전제하지 않은 형식적 외교의 틀에 불과하였다”며 “주변 국가들은 이를 한과 문화적, 경제적으로 교류하기 위한 통로로 적극 활용하였다”고 표현했다. 두 교과서 모두 한 제국이 군사적으로 앞선 흉노에게 물자를 바치고 공주를 왕비로 바침으로써 친선 관계를 유지한 사실을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형성된 다양한 외교관계의 사례로 인용했다.

‘교역망의 발달과 은 유통’이란 단원은 기존 교과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교과서는 16세기 이후 국제무역의 결제수단으로 은이 등장함에 따라 은 유통을 매개로 한 동아시아 역내 교역망, 나아가 서구와의 교역이 형성된 사실을 상세히 서술했다. 당시 일본이 전 세계 은의 3분의 1을 생산했고, 이렇게 생산된 은은 조선을 거쳐 명으로 유입됐다는 사실 등이다.

현대에 와서는 한국과 일본의 고도경제성장, 중국의 경제개방과 성장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천재교육 교과서는 ‘경제발전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중국의 덩샤오핑과 한국의 정주영을 소개하는 데 한 페이지를 할애했다. 북한 경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기술했다. 교학사판은 ‘중국과 북한, 위기 속에서 다른 길을 선택하다’란 소제목 아래 “중국은 개혁, 개방정책을 펴면서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점과 “북한식 사회주의에 대한 집착은 도리어 경제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는 점을 대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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