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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I 찍자면 바가지, 필요 없다면 엉터리? … 의사 좀 믿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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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진우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

“MRI(자기공명영상촬영)도 안 찍고 수술하자시니 믿음이 안 가서 그랬습니다.”

 얼마 전 필자의 진료실을 1년 만에 찾은 환자 A씨의 하소연이었다. 30대 후반의 남성인 그는 지난해 초 발목이 계속 아파 우리 병원을 찾았다. X선을 찍어 보니 발목 부위의 연골에 손상이 발견돼 바로 수술 날짜를 잡자고 하니 갑자기 발길을 끊었다.

 그 후 A씨는 다른 병원에서 MRI를 포함한 각종 검사를 받고 결국 같은 진단명으로 수술했다. 그러나 수술 예후가 좋지 못해 1년여 만에 다시 필자를 찾은 것이다. 나를 못 믿은 A씨에게 서운함이 들면서 동시에 오죽 의사가 못 미더웠으면 그랬겠나 싶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최근엔 또 지인의 아버지가 넘어져 응급실을 찾은 적이 있었다. 담당 의사가 머리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 보자고 했지만 별다른 외상도 없는데 괜히 비싼 돈 들일 것 없다며 뿌리치고 집으로 가셨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귀가 멍멍하고 어지러워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았다. CT 검사 결과 귀 안의 뼈가 부러졌고, 뇌출혈이 두 군데 있었다. 조금만 출혈 위치가 바뀌었으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될 뻔했다.

 많은 환자가 병원에 CT나 MRI 같은 비싼 검사를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반대로 비싼 검사비로 바가지 씌운다며 검사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런 밑바탕에는 병원이나 의사들에 대한 불신(不信)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지난해 한 시장조사기관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12개 직업군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의사들에 대한 신뢰도는 10점 만점에 5.1점으로 나타났다. 초·중·고 교사(5.7점), 대학교수와 시민단체 종사자(각 5.3점) 등에 이어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 대한 믿음이 내 기대치보다는 낮았다. 반면 영국은 직종별 신뢰도 조사에서 의사가 25년이 넘게 1위를 차지했다. 1983년 82%에서 2008년 92%로 계속 상승 중이다.

  부디 선무당 같은 인터넷 지식과 만병통치 건강보조식품 설명서보단 의사의 말 좀 믿어주길 바란다. 의사들도 환자들에게 시의적절하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치료 방법 등의 결정에 환자 본인이 적극 참여하게 해 의사에 대한 믿음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이진우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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