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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삼차로 병충해 퇴치 … 세계 차 챔피언 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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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녹차생산 업체 장원의 이진호 설록차연구팀장이 제주 녹차밭을 둘러보고 있다.

오는 27일 제주 남제주군 안덕면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의 자회사 ‘장원’의 녹차밭에 25명의 손님이 온다. 미국·독일·스위스 등지에서 온 유기농 전문가와 농학자들이다.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리는 제17회 세계유기농대회 참석차 방한한 이들이다.

 이들이 녹차밭을 보러 제주까지 가는 데엔 이유가 있다. 장원이 180만여㎡(약 55만 평) 규모의 녹차밭을 100% 유기농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드문 대규모 유기농 다원이다.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IFOAM)으로부터 인증도 받았다. 26일 사전학술대회에서는 이진호(42) 설록차연구팀장이 직접 장원의 유기농 재배 사례를 발표한다. 이 팀장은 “대규모로 차를 키우면 병충해 때문에 수확량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는 게 보통”이라며 “그래서 차 선진국인 일본에서도 990~3300㎥ 정도의 소규모 농장에서만 유기농 재배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유기농 재배를 아무리 잘 해도 농약과 화학비료를 써서 재배하는 방식(관행 재배) 생산량의 70% 이상 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장원은 지난해 관행 재배의 75%에 해당하는 녹차를 수확했다. 비법은 가지치기다. 병충해가 심해지면 1m 정도 크기의 차나무를 30㎝까지 자른다. 병충을 굶겨 죽이는 전략이다. 이 팀장은 “간단해 보이지만 나무가 웬만큼 튼튼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고도의 농법”이라고 했다. 가지를 언제, 얼마나 칠 것인가 하는 것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얻어낼 수 있는 고도의 노하우다.

 비료도 자체 개발했다. 유채박·대두박·피마자박(유채씨·콩·피마자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과 갈매기 분뇨를 비료로 쓴다. 농약 대신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벌칙으로 마시는 ‘고삼차’를 쓴다. 고삼차 추출물을 나무에 뿌리면 잡초를 줄일 수 있다. 나방을 퇴치하기 위해 밭 인근에 웅덩이를 파고 암컷이 풍기는 페로몬을 놓기도 한다. 모두 이 팀장이 2004년부터 실패를 거듭하며 만들어낸 농법들이다.

 세계가 장원에 주목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설록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북미 월드 티 챔피언십(World Tea Championship)’ 녹차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유기농 녹차는 관행 농법으로 지은 녹차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다 보니 녹차의 맛을 좌우하는 질소 성분이 줄어드는 탓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 팀장은 질소를 다량 함유한 단백질 성분의 유기 비료를 개발했다. 섬인 제주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미역·파래 같은 해초류와 갈치·고등어의 꼬리·내장으로 만든 비료다. 유산균을 활용해 발효시켜 쓴다. 이 팀장은 올해 처음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총 3억원어치의 설록차를 수출했다. 일본의 소규모 농장에서 유기농 녹차를 수입하던 업체들이 원전 사고 이후 새로운 거래처를 찾던 중 장원 측에 연락을 해온 것이다. 북미 월드 티 챔피언십 당시 장원의 부스를 찾아왔던 이들이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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