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r.원칙 … 5·6공·YS정권서 중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1992년 3월 31일 민자당 당직자 이·취임식 당시. 김영삼 대표가 신임 이춘구 사무총장(왼쪽에서 둘째)과 김용태 정책위의장(오른쪽)의 손을 붙잡고 있다. 왼쪽은 사무총장에서 막 물러난 허주(虛舟) 김윤환 의원(작고). [중앙포토]


11~14대 국회의원과 민자당(한나라당 전신) 대표를 지낸 이춘구 전 의원이 20일 지병인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78세. 이 전 의원은 군(육군 준장) 출신 정치인으로, 5·6공화국과 김영삼 정부에서 두루 요직을 거쳤다. 청렴한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군과 정치권에서 받았다. 그가 민자당 대표를 하던 시절 비서실장으로 보좌했던 강용식 전 의원은 “현역 시절에도 청렴 강직했지만 1996년 정계를 떠난 이후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은둔생활을 했던 한국 정치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분”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육사 14기 하나회 출신이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79년 12·12 쿠데타와 이듬해 5·17 비상계엄을 주도했을 때엔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 이후 전 전 대통령이 이끌던 ‘신(新)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재무위원과 사회정화위원장을 맡았다. 81년 제11대 총선에서 민정당 전국구(현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충북 제천에서 12~14대 지역구 의원을 지냈다.

 5공화국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무장관을 하던 때 내무차관으로 보좌했던 인연으로 86년 민정당 사무총장에 기용됐다. 이듬해엔 민정당 선거대책본부장,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맡는 등 노 전 대통령의 6공화국 출범(1988년 2월)에 기여했다.

 같은 해 4월 총선에서 민자당의 패배로 여소야대 구도가 조성되고, 5공 비리 청산 여론이 확대되자 노 전 대통령은 89년 12월 고교·육사 동기생인 정호용 당시 의원을 사퇴시키려 했다. 이때 고인은 “추운 겨울에 (정 의원을) 내의 바람으로 내쫓을 수 없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90년 1월 이뤄진 민정당과 통일민주당·공화당의 3당 합당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하지만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의 대통령 후보직을 획득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92년 14대 대선을 치를 때 선거대책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94년엔 국회부의장, 95년에는 민자당 대표에 임명되는 등 요직을 지냈다.

 고인은 공사(公私) 구분을 엄격히 하는 원칙주의자였다. 민원 하러 왔다가 그의 호통을 듣고 물러난 친인척이 적지 않았고, 당의 실·국장들이 엉터리 문서로 결재를 받으려다 꾸지람을 들은 경우도 많았다.

고인은 96년 1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12·12 쿠데타를 소급 처벌하는 특별법을 만들자 항의하는 뜻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춘자씨와 아들 재용(개인사업), 딸 서영, 사위 권기연(에스에스모터스 대표이사)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1호. 발인은 22일이다. 02-2258-5971. 

정효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