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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1800명 남은 인디언 ‘모히건’족 … 첫 여성 추장 무타위 무타하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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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네티컷주에 밀집해 있는 인디언 원주민 부족 ‘모히건’(Mohegan)은 늑대라는 뜻이다. 늑대의 자손으로 거북이를 통해 세상이 창조됐다는 신화를 가진 그들의 역사는 1만 년에 이른다. 그러나 18세기 뉴잉글랜드 지역 유럽 정착민들의 잔인한 횡포와 바이러스로 인해 그들의 땅과 인구 대부분이 희생됐다. 지금 그들은 고작 1800명 정도. 남은 땅도 과거보다 50분의 1로 줄었다. 그것도 코네티컷주 정부로부터 돈을 주고 도로 사와야 한다. 하지만 부족에는 지금 황금알을 낳는 거위 카지노 ‘모히건 선(Mohegan Sun)’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무시되고 억압받으며 알코올과 마약에 찌들었던 그들이 자본주의 중심에서 대형 카지노 주인으로 거북이 창조 신화를 느릿느릿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모히건 부족의 18대 추장을 카지노 인근 사무실에서 만났다.

글=조진화 객원기자
사진=모히건 부족 제공


21세기 인디언 추장의 이름은 ‘늑대와 춤을’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보던 깃털 달린 모자나 화려한 색의 옷도 입고 있지 않았다. 어두운 색의 실크 상의와 검은 정장 차림이었다. 튀어나온 광대뼈나 어두운 피부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 쇼핑몰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보통 미국인이었다. 그러나 추장은 여성이었다. 모히건 부족 18대 추장, 린 말레르바(60). 지난해 부족 역사상 최초로 여성 추장으로 추대됐다. 그전에는 부족 의회장을 맡았었다. 그것 역시 역사상 최초 여성이었다.

●부족 역사상 ‘여성 최초’란 기록을 많이 세웠습니다.

 “1950~60년대에 자라면서 페미니즘 운동을 겪었어요. 엄마는 아이들과 집에만 있고, 차는 아빠만 모는 그런 시대였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를 포함한 여성들이 과거에 비해서는 그래도 평등하게 대우받고 있다는 사실은 괄목할 만하죠.”

●여성 추장,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요.

 “과거나 현재, 여성 추장이 있는 부족들이 있어요. 모히건 부족에서는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글쎄요. 우리는 추장이 평생직이라 그런 것 같아요. 한번 추장이 되면 죽을 때까지 하니까. 그렇다고 여성 지도자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정식 직함이 있든 없든 언제나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던 여성은 항상 있었어요.”

 모히건 부족은 1700년대에 임시 추장으로 여성을 잠시 세운 적이 있다. 하지만 정식 절차를 밟은 건 말레르바가 처음이다.

●추장 선거운동은 얼마나 치열했나요.

 “아니에요. 부족 의회가 저를 지명했어요. 모히건 부족은 스스로 법을 만들고 따릅니다. 17대 추장까지는 의회가 후보들을 지명하고, 부족 전원이 투표를 하는 식이었는데, 최근 바뀐 선거법은 의회와 원로위원회가 추장을 뽑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의원들이 각자 후보를 추천하고 최종적으로 원로위원회가 선택하는데, 저는 다른 사람을 추장으로 추천했던 터라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주민투표를 버리고, 반(反)민주주의로 돌아갔다는 뜻인가요.

 “글쎄요. 제 생각에는 원로들이 추장 후보를 세우고, 부족들이 찬반 투표를 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에요. 다음 추장 뽑을 때는 법이 바뀔지도모르죠.”

●사실, 추장이 부족을 대표한다는 것 외에는 딱히 해야 할 의무는 없지 않나요.

 “그래서 처음 1년이 힘들었어요. 의회장으로 하는 일이 너무 많았는데 갑자기 일선에서 물러났으니까요. 시간을 좀 갖고 생각하려고 ‘대화 모임’(Talking Circle)을 많이 가졌습니다. 소규모로 부족들과 만나 의견을 들었죠. 막대기를 건네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무엇에 대해서 원하는 만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요. 그리고 의회와 논의해 제가 추장으로 나갈 방향을 잡는 중입니다. 너무 구체적인 추장의 역할을 담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 부족은 매일 변화를 겪고 있거든요. 그 변화에 대처하려면 상자에 갇히지 않은 유연한 추장이 필요해요.”

 추장은 세 가지로 자신의 역할을 정리했다. 첫째, 일반 부족원들과 간부들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 둘째, 부족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세상에 알리는 것. 셋째, 모히건을 포함해 미국 전체 투표권의 1%도 안 되는 모든 인디언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증조부는 14대 추장이었고, 어머니도 의회원을 지내신 로열 패밀리 출신이십니다.

 “증조부의 울프 클럽(wolf club·모히건을 상징하는 늑대 문양이 새겨진 곤봉으로, 추장들이 들고 다닌다)을 제 책상 앞에 놓고 매일 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클럽은 증조부 이후 추장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건데요. 매일 클럽을 보면서 ‘나는 18대 추장일 뿐이다’라고 되새깁니다. 부족 전통에 따르면 우리가 소유했던 모든 물건에는 혼과 교훈이 담겨 있어요. 이 클럽도 마찬가지지요. 물려받은 교훈을 살리고, 제 경험까지 보태서 다음 추장에게 물려줘야죠.”

●추장이 된 후에야 인디언 이름을 받으신 이유가 있나요.

모히건 의상을 입은 여성 추장 무타위 무타하시.


“그전까지는 모히건 이름을 받는 것이 마음에 그렇게 와 닿지 않았어요. 제 딸들은 10대가 되기 전에 모두 받았는데 말이에요. 추장이 되면서 메디신 우먼(medicine woman·부족 내 의사나 주술사 같은 역할을 하는 여성)과 만나 ‘나란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죠. 그래서 결정한 이름이 ‘송스콰 무타위 무타하시’입니다.

 송스콰는 여성 추장이라는 말인데, 문자 그대로는 ‘바위 여성’이라는 뜻이고요. 무타위 무타하시는 ‘풍성한 마음(Many Hearts)’입니다. 제가 심장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였고 하트가 심장이라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제 이름에는 지금까지 문자 그대로 제가 사람들의 심장을 많이 다뤘고, 이제부터는 부족들의 마음을 챙긴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의 전직은 간호사였다. 말단 간호사로 시작해 코네티컷주 로런스&메모리얼 병원에서 심장질환 환자들을 맡는 부서의 고위직까지 지냈다. 당시 그녀의 목표는 병원의 환자 지원 서비스 부서 부사장까지 오르는 것이었다. 마침 그 자리가 공석이 됐고, 병원에서도 그에게 직을 맡기겠다고 의중을 물어왔다. 바로 그때, 부족에서도 부족원들을 위한 의료 프로그램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부족을 택했다.

●부족에서 제시한 연봉이 더 좋았나 보죠.

 “하하. 그것도 사실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머리보다 제 가슴을 따라 결정을 내려 다행이에요. 제가 인생에 내린 결정 중 최고입니다. 우리 부족을 위해 일할 수 있으니까요. 그때 노인들을 제 사무실에 모셔 무엇을 원하는지 의견을 물어 수렴했습니다. 그중에서 우선권을 두고 선택을 하고, 실버타운 건립 등을 추진했죠.”

 그는 그렇게 부족 내 의료 서비스 디렉터에서 의회원, 의회장을 거쳐 추장에 올랐다.

●어렸을 때, 인디언으로 ‘왕따’는 안 당하셨어요?

 “없었어요. 제가 자란 동네에는 거의 인디언 어린이들뿐이었거든요. 제가 다닌 학교 이름은 심지어 모히건 학교였는데요. 그냥 일반 학교면서도 워낙 인디언 아이들이 많아 그렇게 이름 지었죠. 동네 고등학교 교지 이름도 인디언 이름에 인디언 추장까지 그려져 있었어요. 물론 우리는 여전히 소수였지만, 워낙 동네가 전통적으로 인디언들과 섞여 살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어요.”

●1970년대에는 변화가 있었죠.

 “한창 흑인 차별 반대 운동이 일던 때예요. 그 영향으로 인디언 아이들을 다른 동네로 몽땅 전학을 시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죠. 한 학교에 너무 인디언 애들이 많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당시 인디언 부모들이 협회를 만들어서 애들한테 단단히 주의를 시켰죠. 학교에서 누가 ‘모히건 인디언이냐’고 물으면 절대 손들지 말라고요. 그럼 다른 학교로 전학 가야 된다고 말이에요. 그러면서 모히건에 대한 대중 교육을 시작해야겠다는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그래서 학부모들이 나서서 ‘독서 모임’ 등 대중 교육을 시작했죠.”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인디언 가치 사이에 충돌은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인디언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대해 배우는 게 어땠겠어요? 저는 학교에서 연극을 하면 항상 카우보이를 하고 싶었어요. 인디언 역을 맡으면 항상 죽으니까요. 그런 인디언 이미지를 학교에서 배우면서 자랐죠. 제 딸들도 마찬가지고요. 자라면서 보고 듣는 인디언과 달리, 학교에서 배우는 인디언 이미지는 영화에 나오는 것들뿐이었으니까요.”

●남편은 인디언이 아니시죠.

 “이탈리아인입니다. 매년 콜럼버스 데이(매년 미국에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축하하는 기념일)만 되면 자축하겠다고 나서서 말입니다. 저랑 제 딸들은 안 하죠. 결혼한 지 30년인데 아직도 포기를 못했어요. 하하. 저랑 이웃에서 살았고, 결혼하고 난 뒤 저를 통해 또 저희 어머니를 통해 인디언 문화에 대해 많이 배웠죠.”

●모히건 부족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뭘까요.

 “저희는 유럽 정착민들에 의해 한때 부족민 90%, 땅의 90%를 잃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정착민들이 우리 땅에 들어오면서 우리를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하고 싶어했죠. 그들이 우리 땅에 처음 들어선 사회인 것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 역사는 미국 역사보다 훨씬 오래전에 시작됐습니다. 저희의 역사는 생존의 역사입니다.”

●인디언 하면 마약, 알코올 중독자 이미지가 팽배합니다.

 “인디언 부족들은 대부분 몇 세대를 거쳐 트라우마를 겪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인디언의 50~75%가 기숙사 학교에 보내졌습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인디언 문화와 언어를 없애고 ‘인디언스러움’을 없애기 위해서죠. 그렇게 정체성을 말살시킨 뒤 다시 부족보호구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제대로 된 성인으로, 부모 역할을 할 수 있었겠어요? 전통적인 가치와 전혀 상관없이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가정을 꾸릴 수 있었겠습니까. 가난에 직면한 사람들이 알코올, 마약 중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을까요? 전 중독자들의 일부는 현실을 잊기 위한 방법으로 그 길을 택했다고 봅니다.”

 유럽인이 들어오기 전인 1600년대 모히건의 땅은 2만에이커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것이 1700년대에는 2000에이커로 줄고, 1861년에는 모히건 교회 건물 하나만 남았다. 약 0.25에이커 정도의 땅이었다. 교회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인들이 인디언 ‘개화’ 목적으로 강제 기독교 개종을 위해 세운 것이었다. 현재 부족은 코네티컷 정부에 돈을 주고 400에이커 정도를 다시 되산 상태다.

 부족이 다시 찾은 땅에 ‘모히건 선’ 카지노를 세운 것은 1996년. 2010년 총수입 15억 달러 이상을 냈다. 310만 평방피트 넓이로 미국 내 카지노 중 둘째로 큰 규모다. 이 수익으로 부족원 모두에게 무상으로 의료보험 혜택을 보장하고, 대학에 진학하면 전액 학비를 무상으로 지원한다. 또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인디언 뮤지엄에 100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올가을 15주년 기념 콘서트에는 제니퍼 로페즈가 출연할 계획이다.

 카지노 건립은 쉽지 않았다. 우선 연방정부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다. 한 번 실패했다. 1994년에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이 인정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8년 서명한 ‘인디언 오락 제한법’을 적용 받는 것으로 이어진다. 정부 인정을 받은 부족만 카지노를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부족, 저 부족이 인정을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하면서 부족들 사이가 복잡해지기도 했다.

●왜 인디언이 카지노를 하느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디언 오락 제한법이 왜 생겼는지 아세요? 정부가 인디언 원주민의 안녕을 보장하는 법은 만들어 놨지만, 절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인디언 한 명에게 보조하는 정부 의료비가 죄수에게 보조하는 돈의 절반입니다. 그래서 이 법안을 만들어 부족이 돈을 벌 기회를 주고, 동시에 정부는 자신들의 부담을 더는 거죠. 주 정부가 복권을 이용해 수익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인디언 부족들을 재정적으로 도와주기만 한다는 오해가 많죠.”

●인디언이라서 세금을 안 낸다는 오해도 있죠.

 “정말 웃긴 얘기죠. 사람들은 우리가 세금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연방정부에 세금을 냅니다. 또 코네티컷주에는 우리 카지노 슬롯머신 수입의 25%를 세금으로 내야 해요. 우리도 다른 대기업처럼 세금 7%만 내고 싶어요. 그러면 정말 좋지 않겠어요? 그들처럼 세제 혜택까지 받고 말이에요.”

●‘모히건=카지노’ 이미지가 불쾌하지는 않으신지요.

 “카지노가 상당히 성공적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카지노 사람들은 아닙니다. 먹고사는 수단일 뿐이죠. 카지노 수익으로 우리 멤버의 노후를 보장하고, 의료보험과 장학금을 지원하긴 하지만, 여전히 수단이에요. 이렇게 모히건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거죠.”

●그 수익으로 지금은 사라진 모히건 언어도 복구하고 있죠.

 “저희 언어가 미국인 사이에서 악마의 언어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우리 말을 쓸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모히건 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없어요. 메디신 우먼 중 한 명이 남긴 일기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모히건 언어와 영어로 쓰여 있어서 그것을 바탕으로 언어학자와 복구 중입니다.”

●카지노 고용 인원만 8000여 명입니다. 부족 구성원당 4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셈입니다.
 “카지노 직원이라면 모두 모히건 부족 공동묘지와 박물관을 방문해 모히건식 오리엔테이션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그들이 모히건 땅에서 일한다는 의미를 되새겨주죠. 의회장으로 있으면서 제가 항상 염두에 두었던 것은 부족원들의 안녕뿐 아니라 카지노 직원들의 보장된 미래였습니다. 결국 우리 직원들이 지역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펜실베이니아주에도 카지노가 있고, 곧 매사추세츠주에도 들어서죠.

 “매사추세츠주는 아직 법을 통과시키지 않아 기다리고 있고, 펜주 카지노는 성공적입니다. 카지노를 운영하는 부족 중에서는 저희가 최초로 상업 카지노를 그곳에서 열었습니다. 카지노를 운영하는 인디언 부족들은 항상 다른 사업도 생각해야 하는데, 카지노 지을 때 진 아직 빚이 많아서요.”

●거의 갚으셨나요.

 “아직도 조금씩 갚고 있습니다. 오클라호마에 있는 한 부족은 고급 초콜릿 사업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고, 어떤 부족은 에너지 사업에 손을 댔고요. 체로키 부족은 카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른 사업에 투자를 하기 어렵지만, 저희도 곧 생각해야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사무실 구석에 청진기와 혈압측정기가 눈에 띄었다. 이유인즉슨, 노인 부족원들은 몸이 좋지 않으면 여전히 그를 찾기 때문이란다. ‘어디가 아픈데 무슨 약을 먹어야 되느냐’ 같은 전화 문의도 다반사다. 큰 병이 아닐 때가 더 많지만, 직접 얼굴을 보고 혈압을 재주는 추장은 “아무래도 한번 간호사는 영원한 간호사인가 보다”면서 웃었다. 진정 모히건 부족 추장은 ‘풍성한 마음’이었다.

What Matters Most?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제 가족과, 모히건 부족, 미국 내 인디언들 모두에게 긍정적인 힘이라는 사실입니다.”

j 칵테일 >> ‘라스트 모히건’ 됐어야 하는데 …

영화 ‘라스트 모히칸’의 모히칸(Mohican) 부족과 모히건(Mohegan) 부족은 전혀 다른 인디언 부족이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은 실제 모히건 부족의 유명한 추장 중 한 명을 본떠 만들어진 캐릭터다. 영화의 원작인 동명 소설을 쓴 작가 제임스 쿠퍼가 모히건과 모히칸을 헛갈렸던 것이다. 저자가 제대로 알았더라면 영화나 소설 이름 역시 ‘라스트 모히건’이 됐을 것이다.

>> 추장 심벌도 여성적으로

모히건 모든 추장은 이름 외에도 자신만의 심벌을 갖는다. 추장의 서명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남성 추장들의 심벌은 심심하고 재미없었다”고 웃는 무타위 무타하시의 심벌은 다분히 여성적이다. 메디신 우먼과 함께 디자인했다. 맨 밑의 점은 창조자를 뜻하고, 그 위의 선은 자연의 어머니를 나타낸다. 왼쪽 세 개의 점은 그의 증조부 밑으로 3대를 가리키고, 오른쪽 3개의 점은 선조들과 현 세대, 그리고 미래 세대를 나타낸다. 하트 모양은 추장 자신을 뜻한다. 그 위로 분수처럼 솟은 것은 옥수수 나무 두 개로, 육을 살리는 음식, 혼을 살리는 음식을 뜻한다.

“학교 연극에서 인디언 역 싫었어요 #늘 먼저 죽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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