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불편해 밤샘조사 받기 힘들다” 곽노현 호소에 일단 돌려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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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고 후보 단일화를 한 것 아닌가요?”(수사 검사)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저는 박 교수의 처지가 딱해 보여 선의로 2억원을 준 것입니다.”(곽노현 서울시교육감)

 5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위치한 중앙지검 청사 9층에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설전이 벌어졌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설전의 당사자는 서울시교육감 후보 단일화 뒷거래 혐의를 입증하려는 수사 검사와 범의(犯意)가 없었음을 주장하는 곽노현 교육감이었다. 곽 교육감은 이날 묵비권을 행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검사 질문에 동석한 김칠준 변호사와 상의를 거쳐 답변을 내놓는 신중함을 보였다. 곽 교육감은 그러나 그동안의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누적된 듯 조사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지쳐 갔다. 그는 오후 7시쯤 “몸이 불편해 밤샘조사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호소했고, 검찰은 일단 밤늦게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곽 교육감의 답변 요지는 검찰 밖에서 밝힌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는 박 교수에게 준 2억원은 대가성이 없는 자금이며, 지난해 5월 선거캠프의 회계책임자인 이보훈(57)씨와 박 교수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인 양재원(52)씨 간 이면합의 사실도 몰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곽 교육감이 좀 긴장한 것 같았다”며 “시간을 충분히 두고 곽 교육감의 진술을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박 교수와의 대질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앞서 곽 교육감은 이날 검찰의 출석 요구시점인 오전 10시보다 한 시간 늦은 오전 11시 감색 양복에 파란색 넥타이 차림으로 검찰에 출석했으며 기자들의 질문에 굳게 입을 닫았다. ‘곽노현 교육감님 힘내세요’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그를 기다리던 지지자 40여 명은 곽 교육감이 도착하자 일제히 ‘곽노현’을 연호했다. 이때 반대자 10여 명이 곽 교육감에게 몰려가 사퇴를 요구하다가 지지자들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박 교수 측 녹취록 일부 공개=이날 박 교수 측이 작성한 녹취록의 일부가 공개됐다. 녹취록에 따르면 곽 교육감 측 협상대리인인 김성오씨는 지난해 8월과 9월 박 교수 측 인사로부터 돈을 달라는 요구를 받자 “올해는 곤란하다. 내년 정도에 천천히 하자” “12월 출판기념회가 자연스러우니까 그걸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또 “지난해 9월 곽 교육감을 찾아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도 부끄럽지 않으냐’고 따졌더니 곽 교육감이 깜짝 놀라 나를 붙잡으려 했다”는 박 교수의 발언도 나와 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8월에 선거보전금이 들어오면서 이씨와 양씨 간의 이면합의 내용을 알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출판기념회 발언은 곽 교육감의 출판기념회에서 돈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박 교수를 돕기 위해 출판기념회 등을 열자는 아이디어를 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와의 대화를 녹음한 박 교수의 측근은 서울시교육청에 자리를 원했으나 성사되지 않자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던 사람”이라며 “녹취록 전부를 공개하기 전에는 그 내용을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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