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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2.0을 기다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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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정치 뉴스가 온통 안철수다.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한 것도 아닌데 정치권에선 태풍의 눈이 됐다. 선량한 시민이 분연히 일어나 구악(舊惡) 정치를 깨부순다는 이미지를 준다. 그 카타르시스는 정치 영화의 고전 ‘스미스, 워싱턴에 가다’(1939)를 훨씬 능가한다.

 정치권은 벌집 쑤셔놓은 듯하다. 그가 출마하지 않는다 해도 정치의 진입장벽과 프로 정치인들의 독점구조는 깨진 거나 다름없다. 그런 위기감 탓일까,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기 바쁘다. 대개는 가랑이 사이에 꼬리를 쳐박고 뒷걸음치며 컹컹 짖어대는 모습이다. “나 지금 떨고 있니”라는 드라마 대사가 딱 어울리지 않나. 여야, 좌우 할 것 없이 다 그렇다. 안쓰러워 보이긴 하나 결국 자업자득이다.

 서울시장 출마 여부는 전적으로 그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자기 책임이다. 고민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를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정치엔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제법 있다. 그가 정치에 물들지 않길 바라는 사람들이다. 정치인이라는 딱지를 그 스스로 어떻게 소화할지도 궁금하다. 물론 지금까지 여론조사에선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좋아하고 지지하는 것과 ‘정치인 안철수’ ‘서울시장 안철수’가 성공하는 건 별개다. 높이 헹가래를 쳐주는 건 유권자지만, 안전하게 착지하는 건 본인의 몫이다.

 그에 대한 기대수준은 어느새 엄청나게 높아졌다. 깨끗하고 올곧게 보이는 그가 낡은 정치의 틀을 깨는 것,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지지자들의 바람이다. 그대로만 되면 우리의 고질적인 ‘패거리정치’는 개선될 거다.

 그런데 이를 현실화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지금의 안철수와 ‘정치인(또는 서울시장) 안철수’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나 행정은 우아한 발레가 아니다. 사생결단으로 덤벼야 하는 종합격투기다. 올바른 말, 반듯한 행동, 깨끗한 경력만으로 되는 곳이 아니다.

 따라서 그를 진정으로 아끼고 지지한다면 그에게 고급스러운 철인(哲人)정치를 바라진 말자. 정치는 현실이다. 사자의 심장과 여우의 두뇌가 필요하다. 열정과 감성만으론 안 된다. 이게 그동안의 안철수 이미지와는 안 맞는다. 그가 성공하려면 새로운 안철수, 즉 마키아벨리적 소양을 갖춘 ‘안철수 2.0’이 돼야 한다. 본인도 잘 알 거다. 안 그런 것 같지만 그는 이미 마키아벨리스트가 돼 있는 듯하니, 이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의 순수한 이미지만 보는 지지자들은 안철수에게 도덕군자로 남길 바랄지 모른다. 그는 그럴 수도 없고, 정치에 나온 뒤엔 그래서도 안 된다. 그는 꽤 이전부터 정치적 야성을 갈고 닦은 듯하다. 언론을 타고, 출마를 고민하는 행보에서 그런 흔적이 역력하다.

 앞으로 그에겐 정당도 필요할 거다. 이게 없으면 정치에 ‘안철수DNA’를 남기기 어렵다. 혼자 뛰면 바람처럼 휘몰아치다 바람처럼 사라지기 쉽다. 원래 정당(party)이란 말엔 부분(part)이라는 뜻이 있다. 사회 각 부문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집단이란 말이다. 그와 같은 복수의 정당들이 경쟁을 벌여 전체적으론 다수의 의사를 정치에 반영하는 게 정당 중심의 대의정치다. 혼자 또는 소수 자문그룹끼리 뛰어다닌다면 지지자들의 역량을 모으기 어렵다. 대의정치 또한 공동화된다. 그 역시 이런 시스템을 잘 알 거다.

 안철수는 대단한 희소가치를 지닌다. 허깨비처럼 공중에 붕 떠다니는 강남좌파들과는 존재감이 다르다. 그런 희소자원이 정치입문을 고민하고 있다. 금주 중엔 결론을 낼 모양이다. 안철수2.0으로의 변신이 끝났다고 판단한다면 자연스럽게 출마 선언을 할 거다. 그때까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도 그에겐 정치의 연장선 아닌가 싶다. 그게 아니고 정말 고민했다면, 지금껏 하던 일에 매진하는 게 낫다.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