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CEO 교체 붐 … 경기 바닥 신호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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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터니 얼리

팀 쿡

미국 대기업에 최고경영자(CEO) 교체 붐이 일고 있다. 할인점 코스트코에서 에너지기업 PG&E에 이르기까지 업종 구분도 없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수성보다는 공격에 나설 수장을 찾고 있다는 것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이 4일(현지시간) 전했다. 올 들어 7월까지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미국 경제지 포춘이 뽑은 500대 기업 669곳 가운데 CEO를 교체하거나 교체하기로 한 곳은 전체의 13%에 달했다고 기업연구기관인 크리스콜더가 발표했다. 이는 2005년 16%를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비율로 올 연말까지는 더 높아질 전망이다.

 헤드헌터사 쉴즈메니리 사장인 게일 메니리는 “지난 30개월 동안 미국 대기업은 효율성만 추구한 결과 S&P 500 기업만 27억6000만 달러의 현금을 쌓았다”며 “이제 이사회가 이 돈을 적절히 집행할 CEO 영입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격적인 발탁도 잇따르고 있다. 보수적인 기업문화로 유명한 PG&E는 106년 만에 처음 외부 인사를 CEO로 영입했다. 그것도 경쟁사인 DTE에너지 출신인 앤터니 얼리였다. 3일엔 코스트코와 뉴욕멜론은행이 CEO 교체 계획을 발표했다.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도 지난달 CEO를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팀 쿡에게 넘기기로 했다.

 크리스콜더의 기업지배구조 매트 맥그릴 팀장은 “경기 회복세가 아직 본궤도에 올라서지 않았음에도 기업들이 앞다퉈 CEO 교체에 나서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대기업 CEO 교체는 경기 사이클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가 하강기일 때는 기존 경영진을 유임시키고 현상유지에 치중하지만 경기가 바닥을 치기 시작할 때는 공격적인 경영자를 영입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대기업이 중장기적으로는 경기 회복을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사 대상 대기업의 절반은 COO 자리를 CEO로 승진시키기 위한 발판으로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의 팀 쿡도 잡스 밑에서 COO로 일해 왔다.

 다만 CEO 스카우트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CEO 연봉도 가파르게 올라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연봉을 가장 많이 받은 25명의 CEO 총연봉은 해당 기업이 낸 전체 소득세보다 많았다. CEO 한 명이 받은 연봉이 전체 근로자가 낸 소득세보다 많았다는 얘기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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