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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할리우드 뉴스에 관해선 미 방송들도 그녀 찾는다 … Janice Min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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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와 매거진 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할리우드는 매일같이 새로운 뉴스와 가십을 생산하고, 수많은 잡지가 이를 사냥하며 판매부수를 높인다. 그리고 이 잡지들을 통해 할리우드의 사람들은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고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며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선다. 어찌 보면 둘은 일종의 공생관계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소식을 전하는 매거진 편집장들의 영향력이 막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니스 민(Janice Min)은 그중에서도 단연 톱클래스 편집장이다. 그녀는 2009년까지 뉴욕에서 연예지 ‘어스 위클리(Us Weekly)’ 편집장으로 일하며 기존 100만 부 수준이었던 잡지 발행부수를 190만 부까지 끌어올린 신화를 이뤘다. 연이익 6000만 달러를 넘어서는 경이적 성공도 이어졌다. 당시 재니스 민의 연봉과 성과급은 200만 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연예 매거진계의 여왕이 됐고, 잡지 편집장으로는 드물게 ‘셀레브리티’ 수준의 인기와 명예도 누렸다. 할리우드의 주요 뉴스가 있을 때마다 미 주요 지상파 방송이 그녀를 찾는다. 재니스 민의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다. 할리우드 소식에 대한 그녀의 분석과 의견은 미국 내에서 그만큼의 영향력을 지녔다.  

글=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사진=LA중앙일보 신현식 기자

‘할리우드 리포터’ 뒤집어엎다


그리고 지난해,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LA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엔터테인먼트 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wood Reporter)’의 편집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80년의 역사와 명성을 지닌 ‘할리우드 리포터’는 ‘버라이어티’와 더불어 할리우드의 모든 흐름과 정보를 가장 빠르고 심도 있게 보도하는 업계 전문지다. 일반 대중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그 정보력과 영향력은 엄청나다.

 재니스 민의 신화는 ‘할리우드 리포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그녀는 그간 극심한 경영난을 겪던 ‘할리우드 리포터’를 일으켜 세울 구원투수 자격으로 LA에 왔고, 그 역할을 톡톡해 해내는 중이다. 그런 그녀를 만났다. 그녀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자마자 ‘할리우드 리포터’에 많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을 다 바꿨어요. 아예 ‘할리우드 리포터’ 전체를 뒤엎은 수준이었죠. 매일 발행되던 ‘할리우드 리포터’의 데일리 이슈를 중단하고 이를 온라인 뉴스 서비스와 아이패드 앱으로 대체했습니다. 대신 위클리 이슈로 승부수를 띄웠어요. 최고 퀄리티의 주간지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빠르고 강렬한 혁신이었습니다. 무슨 생각이었습니까.

 “사람들은 속보나 단신은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지만, 깊이 있고 시간을 들여서 봐야 하는 기획 기사들은 지면을 통해 보고 싶어한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더 럭셔리하고 스마트하고 샤프한 ‘할리우드 리포터’로 거듭나려는 전략이었죠. 더 훌륭한 사진작가와 편집 디자이너들을 고용하고 최고 재질의 종이를 사용하는 매거진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3000~4000단어 길이의 인터뷰나 분석 기사를 싣기 시작했고요. 이는 사양길로 접어 들어가고 있는 인쇄 매체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 방향이라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스타일의 기획 기사들도 할리우드를 발칵 뒤집었습니다.

재니스 민이 바꾼 ‘할리우드 리포터’의 전(왼쪽)과 후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사들을 시도해봤어요. 셀레브리티 스타일리스트들에 대한 특집이나 TV쇼 ‘글리’의 파급 효과에 대한 분석 기사, 모델 겸 배우 킴 카다시안의 경제 효과에 대한 조사, 인기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총괄 프로듀서 로언 마이클의 인터뷰 같은 것들이죠. 할리우드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요한 맥을 짚고 파헤치는 동시에 그간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정보들도 상당 부분 포함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했어요. 할리우드 리포터의 기존 독자층이던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의 정보 수집 욕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일반 대중의 흥미와 관심도 끌어들이려 한 것이죠.”

●결과가 좋습니다.

 “현재 ‘할리우드 리포터’ 웹사이트의 월 순 방문자 수는 460만 명입니다. 이전 대비 800% 증가한 수치죠. 데일리 이슈를 폐간하고 위클리 이슈만 발행하며 전체 광고 수입은 50%가 늘었습니다.”

●처음엔 비판도 많았습니다.

 “80년 전통의 매체를 제가 와서 하루아침에 바꾸겠다 하니 ‘곧 망하겠다’라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분도 많았죠. 하지만 전 이조차도 더 좋은 결과를 위한 건강한 회의주의였다고 봐요. 어찌 됐건 전 제 예상이 적중할 줄 알고 있었어요. 실제로도 그랬고요.”

●만족하십니까.

 “일단 ‘잡지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스토리들이 ‘할리우드 리포터’에는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뿌듯합니다. 독자가 인정해 주는 것이니까요. 독자를 만족시키는 매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 항상 최우선 목표입니다. 그렇게 되면 광고를 비롯한 부수적 성공은 자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어요. 대중이 할리우드와 셀레브리티들에 관해 알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기사가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데서부터 모든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앞으로 2~3년 동안 변신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 매체의 영향력이 얼마나 더 커질지,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뉴스의 영역이 얼마나 더 광범위해질지 저 역시도 기대가 됩니다.”

●할리우드에 대한 대중의 욕망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할리우드는 모두가 좋아하고, 동경하고, 닮고 싶어하고, 들어가 일하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또한 수많은 성공신화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셀레브리티에 목을 매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대중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쉽게 다가갈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알고 싶은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 성공신화가 만들어진 과정에 관한 이야기, 이 화려한 세상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것들이죠.”

●그렇다면 할리우드 소식들을 전하는 매체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입니까.

 “대중의 욕구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대중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기호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엔터테인먼트에 관해서는 가끔 진짜 바보 같아 보이는 토픽도 똑 부러지고 깊이 있게 분석하고 보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게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길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매거진 산업은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가장 많은 정보가 오가고 가장 세련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항상 가장 흥미로운 스토리와 가장 훌륭한 비주얼로 대중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을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

“개인적으론 연예인에게 관심 없어요”

●개인적인 삶도 궁금합니다. 아주 화려하고 럭셔리한 생활을 하실 것 같은데요.

 “정말이오? 그거 재미있네요. 전혀 아니거든요. 아침에 일어나 남편과 아이들 먹을 식사 만들고 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후 출근해 바삐 일하고 집에 돌아가 아이들이 잘 자나 확인하는, 남들과 똑같은 삶이에요.”

●영화나 TV에서 보면 매거진 편집장들은 모두 ‘한 성깔’들로 그려집니다.

 “전 그런 타입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는 타입이죠. 사람들도 저랑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 듯해요. 직위나 돈, 권력 때문에 편집장 자리에 오르는 것 자체가 꿈인 사람도 가끔은 있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편집장은 다른 직원들을 존중하고 도와야만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나 TV에서 좀 과장되게 그려진 탓에 대중에게 편견이 생긴 면도 없지 않고요.”

●많은 할리우드 스타와 절친하실 듯합니다.

왼쪽부터 ‘할리우드 리포터’ 발행인 로리 버제스, 영화배우 로브 로이, 조디 포스터, 재니스 민.


“전혀요. 친한 셀레브리티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사실 이게 제 큰 비밀 중 하나랍니다. 스타들에 대한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무관심해요. 할리우드 스토리를 다루고 스타들의 이야기를 골라 싣는 게 제 일이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지요. 저에겐 그저 다 뉴스거리일 뿐입니다. 집에 가서 가족들과 가수나 배우들 얘길 해본 적도 없고, 학창 시절에도 방 안에 영화 포스터 하나 붙여 본 적이 없어요. 행사장에서 유명 스타를 만났다고 친해지고 싶어 먼저 말을 걸어 본 적도 없지요. 사적인 자리에서도 사람들이 연예인 이야기를 하면 속으로 ‘음, 난 사실 관심이 없는데···’ 하고 만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선택했나요.

 “제가 선택한 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가 절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분야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어떤 뉴스건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분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잘 취재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죠. 작은 지역 신문에서 일하다 스물세 살에 ‘피플’지에 입사하며 이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됐어요. 그전까지 전 ‘피플’지 같은 주간 연예지를 제 돈 주고 사 본 역사가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냥 일자리가 필요했고, 가서 열심히 일하다 보니 서서히 전문성이 생겼던 것뿐이죠.”

●기자가 돼야겠다 결심한 계기도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뉴스나 시사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중학생 때 교지 편집부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과정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들고 좋았어요. 그때부터 ‘이걸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죠. 대학에서도 저널리즘을 공부했고요.”

●첫 직장은 작은 지역 일간지였습니다.

 “돌아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입니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2시에서 10시까지 열심히 일했지만 월급은 정말 적었어요. 불안했지요. ‘이것이 내가 꿈꿔왔던 저널리스트의 삶인가’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어요. 스스로 아주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도 처음 했어요.”

●이후 여러 유명 잡지를 거쳐 ‘어스 위클리’의 편집장이 된 것이 서른세 살의 일입니다.

 “운도 좋고, 시기도 좋았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아주 협조적이었죠. 그토록 빨리 그런 위치에 오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죠. 제 관심은 뉴스와 스토리뿐이었어요. 한번도 ‘편집장이 돼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직위, 돈, 권력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었고요.”

●편집장으로 일하는 동안 ‘어스 위클리’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즐거웠어요. 판매량이 팍팍 늘어났으니까요. 매주 월요일 우리 잡지가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보고받는 일이 제일 큰 기쁨이었어요. 우리의 기사가 미국 팝문화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는 평가도 기분이 좋았죠.”

●저널리스트로서 강점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뉴스 판단력이 좋다는 겁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전 연예계에 흥미가 전혀 없는 사람이에요. 누가 몇 번을 이혼하건, 누가 누구와 만나건 개인적으로는 아무 관심이 없죠.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쇼가 대박이 날 것 같다’ ‘저 사람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 사진으로 커버를 만들자’ 하는 판단은 쉽게 서요. 그러다 보니 유망주나 새로운 트렌드를 다루는 첫 매체가 되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 확신은 어디에서 오나요.

 “언제나 자신감은 있어야 한다고 봐요. 물론 그만큼 자신감을 가지려면 다른 사람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고, 의사 결정을 하는 데 있어 아주 합리적인 과정을 거치는 게 기본이 돼야 하겠죠. 가끔은 내 뒤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죠. 그럴수록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랬다면 실패하더라도 분명 배우는 게 있을 테니까요. 위험을 감수하는 데도 익숙한 편입니다. 약간은 위험할 수 있어도, 쉽게 싫증을 느끼고 항상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을 기다리는 대중을 고려한다면 ‘위험 감수의 가치(Value of Risk)’를 안다는 건 필수적이죠.”

●처음부터 그런 확신을 갖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물론입니다. 처음 편집장으로 회의를 할 때는 두려움도 많았지요. ‘내가 혹시 맥락 없는 헛소리를 해 남들이 비웃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많았어요. 언제나 ‘너는 똑똑한 사람’이라는 분위기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하는 데 대한 걱정도 앞섰죠. 하지만 나도 얼마든지 실수를 할 수 있다 생각하고, 혼자가 아니라 다른 훌륭한 스태프들이 일하는 것을 잘 관리하고 이끌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마음먹고 나니 모든 게 수월해졌습니다.”

●또 다른 인생 계획이 있나요.

 “딱히 계획을 갖고 사는 사람이 못 됩니다. 기회가 오면 ‘좋네, 해볼까?’ 하다가, ‘싫다, 그만 할래’ 싶으면 관두는 성격이라서요. 지겨운 것은 못 참는 데다 계획만 앞서면 실망도 커지는 법이니까요. ‘어스 위클리’에서도 ‘이만하면 됐다’ 싶어 나온 것이고, 지금 당장은 ‘할리우드 리포터’를 키우는 데만 집중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제 능력과 한계를 시험해보는 거죠. 물론 죽을 때까지 일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원래 어떤 상황에서건 만족을 찾는 스타일이라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과 같은 성공신화를 꿈꾸는 인생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좋은 학교에 간다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남들이 ‘똑똑하다’고 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인간관계나 커뮤니케이션 스킬, 조직에서의 융화 등 두 손에 넣고 ‘저글링’해야 할 덕목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단순히 조직의 윗자리에 앉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성공이란 스스로 정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결정이나 평가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마세요. 존경하는 사람을 정해 그들을 통해 배우고, 싫어하는 사람을 보며 그렇게 되지 않도록 애쓰세요. 여러분 마음속 결정과 생각을 따를 때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겁니다.”

 생각보다 키는 작았다. 하지만 곧고 당당했다. 꼿꼿하게 악수를 청하는 자세나 시원하고 멋들어진 원피스 차림으로 자신 있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대로 ‘셀레브리티 포스’가 묻어났다.

●유명인사라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 듯합니다.

 “뉴욕에서는 길을 가거나 레스토랑에 앉아 있으면 꽤나 자주 사람들이 알아보고 말을 걸어오곤 했어요. 하루는 큰아들이 ‘엄마, 유명한 사람이야?’ 하고 물어보기도 했죠.”

●한국을 방문해 볼 틈도 없었겠어요.

 “ 한 번 방문해 본 적이 있긴 해요. 사실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편입니다. 한국 영화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애들이 좀 자라면 꼭 함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What Matters Most?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가족이죠. 가족이 없었다면 절대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어스위클리 편집장 직을 제안 받고 고민했을 때, 할리우드 리포터를 맡기 위해 LA로 가야 하나 갈등할 때 모두 남편의 든든한 지원과 격려가 결정적 역할을 했으니까요. 두 아이의 엄마로 사는 것도 저에겐 삶의 큰 부분입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거나 직접 장을 봐 요리해주는 것도 항상 제 삶에서 최우선으로 하는 일들입니다.”

j 칵테일 >> ‘알파 맘’ 재니스 민

지난해 재니스 민이 뉴욕 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이 직장 여성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칼럼의 제목은 ‘알파 와이프의 고백(Confessions of Alpha Wife)’이었다. 재니스 민은 이 글을 통해 잘나가는 고소득 커리어 우먼인 자신과 그에 미치지 못하는 수입을 올렸던 고등학교 역사 교사 출신 남편의 사이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재니스 민과 남편 피터 쉬히는 대학 시절 만나 금방 사랑에 빠졌고 결혼에 골인했다. 당시만 해도 재니스 민의 연봉은 2만4000달러 수준이었다. 남편은 평범한 고등학교 역사 교사였다. 남편은 재니스 민의 커리어에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어스 위클리’ 편집장 자리에 오를 때 그녀에게 가장 큰 용기를 북돋아 준 것도 남편이었다. 이후 그녀의 연봉은 수직 상승했고 한 달 월급이 남편의 연봉보다 높아졌다. 남편은 일을 그만두고 두 아이의 육아에 전념하기로 했다. 재니스 민은 자신이 일과 가정생활 모두에 만족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데는 남편의 공이 가장 크다고 언제나 강조해왔다.

 재니스 민은 칼럼에서 현대 사회의 능력 있는 ‘알파 우먼’들이 수입 면에서 그보다 못한 남편들에게 느끼는 복합적 감정을 지적하며 자신은 사랑, 결혼, 가족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이지만 여자가 남자보다 더 벌면 안 된다거나 남자가 기저귀를 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명확히 밝혔다.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가 누구 한 사람이 돈을 많이 번다고 우위를 점하는 일방적 독재관계(dictatorship)가 아니라 동반자적 관계(partnership)에 가깝다며 “우리는 돈과 권력을 일치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선언했다. 재니스 민은 내년 5월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첫 저서를 출간할 계획이다

재니스 민

1969년생.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중학교 시절 학생신문 기자로 일하며 저널리스트 꿈을 키웠다. 아이비리그 컬럼비아 대학에서 저널리즘으로 학사, 석사를 취득했으며 지역 일간지였던 ‘웨스트체스터 데일리’를 시작으로 ‘피플’ ‘라이프’ ‘인스타일’ 등의 매거진을 거쳐 2002년 ‘어스 위클리’의 에디터로 스카우트된다. 이듬해 전임 편집장이 사임하며 서른세 살의 나이에 편집장 직에 오르게 된다. 2009년까지 6년간 ‘어스 위클리’를 진두지휘하며 발행부수와 매출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리는 신화를 썼다. 지난해부터 할리우드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할리우드 리포터’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광고 전문지 ‘애드위크(Adweek)’가 선정한 ‘올해의 편집장’, 뉴욕 포스트지가 선정한 ‘뉴욕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0인’, 비즈니스 전문지 ‘크레인’이 선정한 ‘주목해야 할 40인’ 등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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