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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의 시시각각

미꾸라지보다 나쁜 ‘메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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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지난해 7월 강용석 한나라당(당시) 의원이 대학생 토론 동아리와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성희롱·성차별적 발언을 한 사실이 중앙일보 심서현 기자의 특종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 등 공인으로서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주절주절 내뱉었다. 당연히 의원직 사퇴감이다. 그나마 40대 초반의 엘리트이기에 충분한 자성의 시간만 갖는다면 국회의원을 그만두더라도 나중에 다른 분야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회 전체 입장에서도, 한 마리 미꾸라지가 난데없이 흙탕물 소동을 일으켰으니 미꾸라지만 깔끔하게 걸러내 자정(自淨) 능력을 보여줄 것으로 믿었다.

 알고 보니 문제의 근원은 ‘미꾸라지’가 아니었다. 그제 국회에서 부결된 강용석 의원 제명안 얘기다. 국회법을 핑계로 방청객과 기자를 내쫓고 TV 중계방송 막고 본회의장 출입문 걸어 잠근 채 기록에도 남지 않는 무기명 투표로 안건을 처리한 박희태 국회의장은 미꾸라지 정도가 아니라 ‘가물치’급(級)이었다. 감히 참람(僭濫)하게도 “죄 없는 사람 있으면 돌을 던져라”고 성경(요한복음)을 인용해 강 의원을 옹호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이를테면 ‘메기’급이다. 우리 국회를 더럽혀온 진범은 한낱 초선 의원 미꾸라지가 아니라 전·현직 국회의장을 포함한 가물치·메기들이었던 셈이다.

 예수가 한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광장에서 한 여인을 둘러싸고 욕하며 돌을 던지고 있었다. 간음한 여인이라고 했다. 예수가 나서서 말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이 여인을 돌로 쳐라.” 사람들이 찔끔해서 돌을 놓고 슬금슬금 물러서는데 웬 중년 아줌마만 줄기차게 여인에게 계속 돌을 던졌다. 남이 버린 돌까지 주워 던졌다. 예수가 한동안 난감한 표정으로 지켜보다 말했다. “엄마. 이제 그만 좀 하세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원죄(原罪)조차 없는 순결한 성모(聖母)로 보는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 전해지는 우스갯소리다. 우리 국회에는 온통 마리아만 모여 있는가, 아니면 성희롱·성폭행범들의 집합체인가. 국회의원 배지 디자인을 당장 전자발찌 모형으로 바꿔야 할 판이다.

 여성단체로부터 지청구를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 자체보다 발언이 들통난 이후의 행위에 더 큰 벌점을 주는 쪽이다. 그의 변호사는 취재기자에게 “소송 걸면 기자님이 지십니다”라고 사실상 협박을 했다고 한다. 취재기자와 언론사가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했고, 더 나쁜 것은 법정에서 사실을 밝힌 학생까지 위증으로 고소한 일이다. 과장해 비유하자면, 당초 발언이 절도죄라면 그 이후의 행동은 강도죄다.

 어제 강 의원과 지난해 7월 저녁식사 자리에 동석했던 한 대학생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 학생이 먼저 강 의원 제명안 부결에 대해 분노부터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의외로 첫마디 대답은 “두려워요”였다. “사회가, 정치가 이럴 줄 정말 몰랐어요”라는 것이었다. “잘못은 우리가 아니라 그쪽(강 의원)이 했는데, 그런 잘못이 국회에서 용인된다면 그게 정의이고 공정사회인가요. 곧 사회에 나가는 우리가 거꾸로 불이익 받게 되는 건 아닌가요”라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미어지고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소송을 당해 여러 차례 법정에 불려나가게 되자 토론 동아리 내에서는 “괜히 진실을 말했다”는 엉뚱한 자책론까지 제기됐다고 한다. 로스쿨 입학을 준비 중인 일부 학생은 강용석 의원이 서울대 법대·사법연수원을 졸업한 엘리트 법조인인 점을 들어 ‘장래 불이익’까지 걱정한다고 했다. 순수하고 능력 있는 대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올곧음 여부에 대해 이토록 부정적 인식을 갖고 지레 겁에 질리게 만든 국회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의 모임인가. 정치권의 ‘메기’급들부터 똑바로 대답해야 한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