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청춘스타의 잘못된 만남

중앙일보

입력

지난주 목요일 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연례행사인 라디오·TV 특파원을 위한 만찬에서 영화 ‘타이태닉’의 주제가가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연단에 등장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참석자들을 향해 “자주 듣게 되는 곡이죠?” 하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굉장히 즐거운 표정이었다.

하기야 언론에 시달릴 만큼 시달려 온 클린턴으로선 ABC 뉴스가 ‘오락과 뉴스의 경계’라는 거대한 빙하에 정면으로 충돌한 상황이 고소하기도 했을 것이다. 더구나 ABC 뉴스진을 포함, 수백 명에 이르는 TV와 라디오 방송국의 중역들이 한 자리에 모인 파티장에서라면 말이다.

문제는 클린턴이 ABC 방송국이 급파한 ‘기자’와 지구 온난화에 관해 20분간 인터뷰를 나누면서 비롯됐다. 그 기자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였다.

ABC의 워싱턴 지국과 미디어 평론가들은 안 그래도 모호해지고 있는 뉴스와 오락의 경계를 아예 무시한 듯한 이 인터뷰에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ABC 뉴스의 데이비드 웨스틴 회장은 전자우편을 통한 해명에서 디카프리오는 인터뷰 진행자로서가 아니라 “단지 백악관 탐방을 위해 파견됐을 뿐이며 모든 언론인의 역할은 언론인이 맡아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 해명은 즉시 새나갔다.

백악관측과 디카프리오측 모두가 그 해명을 반박하고 나서자 웨스틴의 주장은 그저 얼렁뚱땅 둘러대려고 했던 말처럼 되고 말았다. 클린턴조차 “치명타를 안기는 것은 실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은폐하려는 것”이라는 농담을 던졌다.

이른바 ‘레오게이트’(Leogate)
는 ABC가 지구의 날(매해 4월 22일로 미국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이 창안한 환경보호의 날이며 올해 30주년을 맞는다)
을 맞아 환경과 관련된 1시간짜리 특집 뉴스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시작됐다.

네트워크 방송의 뉴스 프로그램은 젊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한편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는 디카프리오는 거의 1년 반 동안 황금시간대의 특집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갖고 여러 방송사의 의견을 타진해 왔다.

일부 방송 관계자들은 ABC 뉴스의 크리스 쿠오모 기자가 진행하는 MTV 식의 짤막한 뉴스에 디카프리오와 클린턴 대통령이 함께 하는 즉석 백악관 탐방기가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이 탐방기를 촬영하기 위해 뉴욕에서 ‘스테디캠’이 공수돼 오고 대통령과 청춘 스타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찍기 위한 정밀 카메라도 3대나 설치됐다.

ABC의 제작자들은 인터뷰에 대비, 디카프리오에게 자료와 질문을 준비시켜 두었다. 그러나 촬영 당일 아침 백악관 직원들이 탐방 취소를 통보했다. 두 사람은 인터뷰만을 녹화했다.

이후 논란이 된 전자우편 답변에 대해 웨스틴은 ABC가 디카프리오를 그토록 철저히 준비시킨 것을 자신이 몰랐기 때문에 나온 실수였다고 변명했다. “그 사실을 내가 알았다면 답변을 다르게 했을 것”이라고 그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웨스틴은 또 방송인 다이앤 소여가 문제의 쿠바 소년 엘리안 곤살레스 인터뷰에서 어린이를 이용했다는 비평가들의 비판이 일면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ABC는 엘리안 件이 ‘방문’이지 인터뷰가 아니었으며, 그 ‘방문’으로 인해 아이가 상처받지 않으리라는 여러 아동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조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어쨌거나 대대적 광고 공세로 그 인터뷰를 선전하려던 제작자들의 계획을 중단시킨 것은 웨스틴이었다.

네트워크 방송의 뉴스 제작진은 새로운 시청자들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준이 낮아진다는 불평을 듣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前 MTV 뉴스 해설가인 타비사 소렌은 지난주 뉴욕타임스紙에서 ‘레오게이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을 꼬집어 ‘언론 경찰’이라 불렀다.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호들갑 떨지 말라.

시청자들도 디카프리오와 에드워드 R.머로(2차대전 때 생생한 보도로 유명한 미국의 방송기자)
를 구분할 정도의 수준은 된다.”[뉴스위크=Mark Hosenball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