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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기자 VS 이 부장 ┃ ⑥ 명절 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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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윤 기자와 이 부장이 각각 내세우는 차례상의 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음식을 차려 조상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는 마음은 같다. [중앙포토]

한민족 최대 명절 한가위가 2주일도 채 안 남았다. 올해도 추석 최대 화두는 차례상 준비다. 50대 가장 이 부장은 조상께 감사하고 가족끼리 유대를 다지는 자리에 어머니 손맛이 빠질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여자들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니 음식을 하기는 하되 조금만 하자고 타협안을 제시한다.

반면 종가 규수인 20대 윤 기자는 지금 어머니가 시달리고 있는, 장차 자신이 겪어야 할 명절증후군의 공포를 이야기한다. 시대가 변한 만큼 차례상 준비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배달음식은 물론이고 가능하다면 ‘퓨전 차례상’도 나쁠 게 없단다. 명절마다 되풀이되는 세대와 성(性)의 갈등이 여기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진=김성룡 기자 요리=서울 신라호텔 백영란 한식조리장 그릇협찬=대가제사(02-414-1816)

만들기 힘들고, 해놔도 안 먹고 …
명절상에 파티음식 올리는 게 어때요


1년 남짓 예정으로 부모님과 캐나다로 떠날 때였어요. 할머니가 신신당부하신 말씀이 있었으니 “제사는 잊지 말고 지내야 한다”는 거였어요. 할머니 당부가 아니더라도 제사는 반드시 챙겨야 할 저희 가족의 중대 임무 내지 사명이죠. 아버지가 2대 독자에 종손이시거든요. 당연히 캐나다에서도 한인 수퍼마켓을 뒤져 제사 음식을 마련하고 교자상을 빌려 제를 올렸는데, 속 모르는 분들은 “여기까지 와서 무슨 차례며 제사를 챙기느냐”고 융통성 없는 구식 사람으로 여기는 눈치였어요.

 하지만 정작 상을 차린 어머니는 미처 구하지 못한 우리 고유의 제물 대신 나름의 재치를 발휘한 걸 죄스러워 하셨어요. 그러나 처음 길을 닦기가 힘들지 한번 길을 내면 발길이 잦아지는 법이라고 했던가요. 이때부터 어머니는 추석이면 쑥이며 단호박 등으로 색색으로 소를 넣어 빚던 송편을 만들지 않으시더군요. 대신 떡집에 제사상에 올릴 만큼만 주문해서 쓰시는 눈치예요.

 그뿐 아니에요. 어머니는 쇠고기 산적 대신 닭고기안심떡갈비를 올리세요. 식구들의 건강을 고려해 모양만 산적인 걸 쓰시는 거죠. 당도가 높은 식혜나 수정과 대신 차를 올리기도 하시고요. 옛날에는 먹을 것이 귀해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이제는 먹을 것이 흔하고 입맛도 변해 전이나 떡 같은 명절 음식이 별로 대접을 못 받는다고,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식구들이 손도 안 대는 음식을 차리는 건 비경제적인 것 같다고 말씀하시면서요.

 저도 어머니 말씀에 공감해요. 명절에도 많은 음식점이 문을 열잖아요. 명절 연휴에 피자 배달 주문이 오히려 늘고, 패밀리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많대요. 명절음식을 만들지 않았거나, 명절음식이 요즘 입맛에 맞지 않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명절음식, 제사 음식에 대해 또래 친구들에게 물어봤어요. 제사가 있는 집이건 없는 집이건 제 친구들은 명절음식에 아예 관심이 없었어요. 제사나 명절을 챙기는 건 유교적 전통에 연연한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관습이고, 제사음식이나 명절음식은 별로 입에 당기지 않는 토속음식이라고 단정짓더군요. 음식 이야기가 묘하게 빗나가 제사를 지내는 건 상상만으로도 버거우니 차라리 제사 안 지내는 종교인을 신랑감으로 택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답니다. 아직 겪어보지 않은 명절 스트레스니, 명절증후군을 걱정하면서 말이에요.

 부장도 명절증후군에 대해 들어보셨죠? 명절 맞이 음식 장만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피로와 스트레스도 명절증후군의 큰 원인이라네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들 없는 종손의 딸로서 조상 섬기는 일이며 명절음식 준비를 돕는 게 몸에 배었다고 자신하는 저도 명절 연휴에 차례는 신경 안 쓰고 여행을 떠나거나 푹 쉬는 집이 부러웠거든요. 저희 집은 꼼짝없이 집을 지키며 명절음식을 장만해야 해요.

 그런데 요즘은 명절이나 제사음식을 통째로 주문해서 쓰는 집이 꽤 많더라고요. 그분들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스스로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들 하시네요. 차례를 지내는 일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온 가족이 모여 즐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아닌 것 같아서 씁쓸해요.

 형편이 허락지 않는다면 배달음식을 쓰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몇 년 전 한 대형 할인점에서 ‘돈가스와 와인으로 차린 퓨전 차례상’을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 좀 파격적이긴 하지만 실현 가능한 발상이 아닌가 싶어요. 조상님이 생전에 돈가스와 와인을 좋아했고 가족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왜 안 되겠어요?

 가가례(家家禮)란 말처럼 지방과 가문마다 차례 상차림과 제를 올리는 방법이 다르고, 시간이 흐르면 풍습도 변하게 마련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제사음식도 가족의 입맛에 맞춰 파티음식 차리듯이 편한 방식으로 다양하게 시도해 보면 명절이 더 즐겁지 않을까요. 모두가 행복한 추석 명절을 위해서 말이에요.

 윤서현 기자

대대로 쌓이고 숙성된 ‘가문의 맛’
양은 줄이되 정성은 다해야지


명절 돌아오는 게 기다려지면 아이들이고, 두려워지면 어른이라는 말이 있네. 아이들이 기다리는 이유는 별식이 많아지고 학교에 가지 않기 때문이겠지. 어른이 두려워하는 건 뭘까. 제수 장만, 전쟁에 비유되는 고향길, 거기에 드는 비용, 그런 것이겠지. 여자들은 동서끼리 신경전도 큰 부담이라더군. 윤 기자는 이 기준으로 보면 어른인가, 아직 아이인가.

 추석이 보름도 채 남지 않았네. 이 무렵 나는 국어책에서 배운 시가 버릇처럼 읊조려진다네.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노천명 시인이 1939년 발표한 ‘장날’이라는 시네. 추석 제수 마련하려 과실을 장에 팔러 가는, 살림 빠듯한 농가의 하루를 동영상처럼 보여 주는 시지. 이 시가 발표되고 30년 뒤, 추석을 앞둔 내 어릴 적 고향 풍경도 꼭 이랬다네. 그러고 보니 벌써 40년도 더 된 일이네.

 그 시절 2대 독자 외며느리이신 어머니의 명절 준비 과정을 잊을 수 없네. 그 풍경이 내게는 명절 맞이의 원형이야. 명절 보름 전부터 할머니와 술을 빚고, 맷돌 돌려 두부 만들고, 산에 가서 솔잎 뽑아와 송편을 쪘지. 전 부치는 일은 참으로 번거로웠다네. 삼발이에 솥뚜껑 뒤집어 건 번철에 무 토막으로 기름칠해 가며 장작불 때서 전을 부쳤지. 전기도 프라이팬도 없는 시골이었으니까.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야. 그래서 명절 음식을 철두철미 집에서 해야 한다고 고집할 생각은 없네. 다만 마음과 정성을 담아 시늉은 해야 한다는 거지.

 명절에 가족이 모이고, 음식 장만해 차례 모시고, 음복하며 나눠 먹는 과정에는 단순한 통과의례 이상의 뜻이 있다고 생각해. 중요한 하나는 우리가 늘 최고라고 꼽는 ‘어머니 맛’의 재확인이지. 그 맛은 어머니만의 솜씨가 아니네.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쌓이고 숙성된 가문의 맛이지.

 종가 규수인 자네가 차례음식 준비에 동참하면 자네 뜻대로 하는 게 하나라도 있던가. 어머니의 참견과 할머니 감독의 눈길이 잠시도 떠나지 않았을 거야. 그렇게 다지고 익어 온 맛, 언제나 그리운 어머니의 맛 아닌가. 그 미각을 1년에 두어 번이라도 함께 나누고 ‘그래, 이 맛이야’ 하는 공감 속에서 가족의 동질감을 확인하고 유대를 다지는 자리가 명절이지. 물론 더 중요한 건 내 근본인 조상께 감사하고 음덕을 간구하는 일이겠지.

 우리 집에서는 명절 전날 삼 형제가 모여 차례 준비를 하네. 음식은 상차림에 쓸 만큼 조금만 하지. 시간을 두고 준비할 건 큰댁에서 틈틈이 하고 차례음식 조리할 것만 하는 거야. 며느리들이 일하는 동안 남자들은 장 보러 간다네. 차례음식이 아닌 별식으로 술상을 준비하지. 일이 끝나면 한 잔 하면서 회포도 풀고 휴식도 한다네. 이러면서 며느리들 스트레스도 조금 풀리고, 가족의 우애를 다지는 명절 본래의 뜻도 살아나는 것 같아.

 문제는 여자들이 명절 음식 준비를 힘들어하는 것인데, 만드는 음식이 너무 많아 그런 것 아닌가 싶어. 명절날 인사 오는 손님이 많았을 때 대접하기 위해 그랬던 건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있나 싶네. 인사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고 음식 대접을 그리 반기는 시대도 아니니까. 음식을 하기는 하되 조금만 하면 좋겠어. 가가례(家家禮)처럼 집안마다 개성 있는 맛을 살려서 쓸 만큼만 말이지.

 우리 집도 배달음식으로 차례를 지낸 본 적이 없는 건 아니라네. 몇 년 전 집안 며느리들이 명절을 앞두고 모두 건강에 문제가 생겨 그랬지. 음식은 물론 향·양초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보내 주더군. 반응은 “참 좋다”가 아니라 “괜찮군”이었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다음 명절에 “또 그렇게 하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어. 조상께 송구해서일까, 비용 때문일까, 음식이 우리 집 맛과 달라 마음에 안 들어서일까.

 이택희 피플위크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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