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곽노현 회견, 사실상 백기 … 수사 끝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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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4시40분. 공안1부가 자리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9층의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곽노현(58) 서울시교육감이 사실상 자백 수준의 기자회견을 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당초 이 기자회견에 대해 별 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전날 서울시교육청 공보관 등이 밝힌 대로 “지난해 교육감 선거 당시 단일화 대가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돈을 준 사실이 없다”는 입장 발표를 예상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곽 교육감이 “박 교수에게 ‘선의’로 2억원을 줬다”는 발언을 하자 검찰은 잔뜩 고무된 표정이었다.

이진한 공안1부장은 “기자회견과 관계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지만 검찰 내부적으로는 “사실상 곽 교육감이 백기를 들면서 수사가 끝난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검찰은 곽 교육감이 일종의 전략 수정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무조건적 부인’ 전략이 먹혀 들지 않게 된 만큼 금품의 대가성이 없었다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는 얘기다. 물론 발언 내용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이미 후보 단일화 당시부터 곽 교육감과 박 교수 사이에 금품을 매개로 한 거래가 있었고, 박 교수가 곽 교육감의 거래 내용 불이행에 대해 자주 불만을 토로했다는 등의 첩보를 확보했다. 검찰이 “박 교수에게 대가성 없이 선의로 돈을 줬다”는 해명을 믿지 않는 이유다.

 대가성 입증에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곽 교육감의 ‘자백’은 검찰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비록 법원이 최근 들어 뇌물 사건 등에서 무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사자들이 혐의를 부인할 경우의 얘기다. 곽 교육감처럼 돈을 준 사람이 줬다고 시인할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검찰은 돈을 은밀하게 주고 받았다는 점도 대가성을 입증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선의’로 준 돈이라면 곽 교육감이 측근인 서울대 법대 동기 동창인 강경선(58) 한국방송통신대 교수와 박 교수 동생의 계좌를 빌려 ‘차명 거래’를 할 이유가 없었다는 얘기다. 또 국민들의 법감정을 고려할 때 2억원을 선의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이미 수사 초기부터 광범위한 계좌 추적을 진행한 끝에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 등도 상당 부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2억원의 출처가 석연치 않다고 보고 출처 확인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돼 경우에 따라 곽 교육감에게는 다른 개인비리가 추가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검찰은 강 교수에 대한 조사가 끝나는 대로 이번주 중 곽 교육감을 소환하기로 했다. 공상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이날 “수사 마무리 시점을 예견할 수는 없지만 공소시효 문제도 있고 해서 신속하게 수사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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