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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은 BOA 구원자 … 하지만 냉혹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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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블룸버그]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81)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위기가 왜 고수익의 기회인지 또 한 번 보여줬다. 구원자의 선한 이미지 뒤에 있는 냉정한 셈법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버핏은 이달 25일 미국 최대 시중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를 구제했다. 그가 “50억 달러(약 5조4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절박한 순간 하느님의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BOA는 미국 더블딥과 유럽 재정위기 탓에 실적이 나빠질 것이란 예상 때문에 궁지에 몰렸다. 주가가 곤두박질했을 뿐만 아니라 위기설마저 월가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미 중앙은행이 나서야 할 판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중앙은행 구제 자체가 BOA가 위기임을 말해주는 방증으로 구실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버핏이 나선 것이다.

 미국 월가에서 버핏의 돈은 ‘신뢰’ 그 자체다. 그의 투자 결정이 곧 믿을 만한 곳이란 인증이나 다름없다. 반면 중동·동아시아 쪽의 자금은 ‘바보의 돈(Fool’s Money)’으로 통한다. 자신들이 말만 잘하면 언제든지 끌어올 수 있었다고 믿어서다. 그래서 위기 순간 중동 등의 돈은 큰 효험이 없다. 버핏의 돈이어야 시장의 믿음을 얻을 수 있다. 금융위기 절정이던 2008년 9월 골드먼삭스는 살고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했던 이유다. 골드먼삭스는 버핏 돈을 유치했고 리먼은 한국과 중동에 SOS를 외쳤다.

 버핏은 자신의 투자가 무슨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안다. 그 점을 최대한 활용해 유리한 조건을 내걸어 수익을 최대한 끌어낸다. 가장 먼저 버핏은 경영실적과 무관하게 수익을 안정적으로 챙길 수 있는 조건을 달기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그는 배당 수익률 6%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BOA 우선주를 사들이기로 했다. 해마다 3억 달러(약 3200억원)를 꼬박꼬박 챙긴다. 골드먼삭스엔 10% 배당 수익을 보장하도록 했다. 위기 상황이 심각할수록 배당 수익률이 올라가는 셈이다.

 버핏은 시세차익을 챙기기 위한 조건도 빼놓지 않는다. 버핏은 BOA 보통주를 주당 7.14달러에 7억 주를 사들일 수 있는 옵션을 받아냈다. 이미 평가 이익이 발생했다. 25~26일 이틀 동안에만 4억3400만 달러(약 4730억원) 정도였다.

 세 번째 조건은 이른바 ‘버핏의 차꼬(Buffett’s shackle : 도망가지 못하게 두 발에 채우는 장치)’다. 버핏이 투자하는 기업의 경영진에 채우는 안전장치다. 로이터통신은 “버핏이 50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자신이 지분을 처분할 때까지 BOA 핵심 경영자의 자사주 매각을 금지했다”고 전했다. 경영진이 한눈 팔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월가의 역사가인 찰스 엘리스는 “경영자의 지분 매각까지 금지할 수 있는 사람은 20세기 초 금융가인 존 피어폰트 모건 이후 버핏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내미는 구원의 손길 뒤에 있는 족쇄를 거부할 경영자는 거의 없다. 덕분에 지금까진 대성공이었다. 그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직전인 2008년 9월 초에 골드먼삭스에 50억 달러를 주입해주고 3년 만에 60억 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챙겼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BOA가 너무 취약한 거인이어서 골드먼삭스처럼 많은 수익을 버핏에게 안겨줄지 불확실하다는 게 월가의 일반적인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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