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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경제위기에 강한 아시아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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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매튜 디킨
한국HSBC은행장

글로벌 금융 위기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저축률(貯蓄率)이 높은 아시아인들의 조심스러운 행보에 대한 장단점을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각에서는 아시아의 ‘저축 과잉’을 불균형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세계 경제 회복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소비를 크게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절약이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많은 아시아 사람들에게는 서구와 같은 수준의 부채율(負債率)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대공황(大恐慌)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극복해 나가면서 우리는 경제의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아시아 도시들은 번성하고, 기업들은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위안화가 미국 달러와 경쟁할 수 있는 세계적인 통화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시작했다.

 HSBC은행은 2050년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30개 국가 중 19개국은 우리가 현재 ‘이머징 마켓’이라고 부르는 국가들이 될 것이며, 중국·인도 등을 필두로 한 9개 아시아 국가가 여기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50년에는 여가와 미래를 위해 투자할 충분한 재력을 가진 아시아 중산층(中産層)은 2억 가구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많은 아시아인들은 이전 세대들이 꿈꿨던 높은 삶의 질을 향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달라진 소비 패턴을 통해 알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세계 중산층 소비 규모가 2009년 21조3000억 달러에서 2030년에는 55조7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며, 이 중 아태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23%에서 2030년에는 59%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듯 아시아는 새로운 ‘부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여행, 사치품, 오락 및 수입명품 등에 대한 소비 수요도 함께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경제 성장에 따른 소비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도 신중하게 자산을 지키는 전통이 있었기에 과거의 여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아시아인이 저축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두려움’ 때문이다. 노후에 정부의 사회 보장제도가 충분하지 않을까, 가장이 중대한 질병이나 부상으로 수입을 잃게 될까, 혹은 자녀 교육비를 감당 못할까 두려워한다. 이런 두려움 때문인지 아시아인들은 서양인들처럼 예금, 펀드, 부동산, 주식, 채권 등으로 투자를 분산하기보다는 현금 보유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 대만, 인도, 싱가포르에서는 투자 가능한 자산의 절반 이상이 현금으로 묶여 있고, 나머지 절반 중 상당 부분은 주식에 투자되고 있다.

 은행들은 고객들을 지원하고 아시아가 새로운 ‘부의 중심지(中心地)’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은행들은 장기적인 금융파트너로서 고객이 자산을 늘리고 보호해서 다양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 꿈이 자녀를 명문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이든, 해외 여행을 하는 것이든 혹은 더 넓은 집을 마련하는 것이든 말이다.

 어느 투자자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미 소비해 버린 돈을 증식(增殖)시킬 방법은 없으며, 벽장 속의 돈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그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소비자들의 진화하는 금융 수요에 발맞춰 은행은 고객들에게 다양한 거래 및 자산 관리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 소득을 지키기 위한 계획, 교육비 마련을 위한 계획, 주택담보대출 등 금융 솔루션은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게 만드는 ‘두려움’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아시아에서 부는 전례 없는 규모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는 향후 40년 안에 이머징 마켓의 1인당 국민소득 성장률이 중국의 경우 800%, 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인도 등은 최소 400%를 기록해 미국의 소득 성장률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자연재해에서부터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금융 위기까지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을 위협하는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현명하게만 자산을 관리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위험들에 잘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매튜 디킨 한국HSBC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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