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컴선달'…"도메인 돈된다" 싹쓸이

중앙일보

입력

전자상거래 벤처기업 H사의 Y사장(36)은 이달 초 웹사이트 개설과 함께 회사를 상징할 수 있는 도메인(domain, 인터넷 주소)을 신청했다.

그러나 20여명의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 1백여가지의 도메인 이름을 입력했지만 이미 다른 업체에 의해 등록된 상태였다.

신청하려던 'p****.com' 이나 'p****.co.kr' 등의 도메인들은 경매시장에서 1억~3억원대의 고가로 거래되고 있었다.

그는 도메인 이름을 검색하는 후이즈(WHOIS)에 확인한 결과 한 인터넷 업체가 자신이 신청하려던 도메인 가운데 60여가지를 싹쓸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Y씨는 "결국 회사를 표현.상징하는 이름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도메인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고 말했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도메인 사냥꾼(일명 스쿼터, squatter)들이 날뛰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업종과는 무관한 도메인을 수백~수천개씩 마구잡이로 사들여 이를 도메인 경매시장에 내다 팔아 엄청난 차익을 챙기고 있다.

이에 따라 정작 이들 도메인이 필요한 업체들은 자신들의 업종이나 회사명 등을 나타내는 도메인을 얻지 못해 3만3천원짜리 '.kr' 도메인을 수억원씩에 사들이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실례로 최근 도메인 경매시장에서 'starcraft.co.kr' 가 1억원에 거래됐다.

국내 도메인(. kr)을 관장하는 한국인터넷정보센터가 최근 ' .kr' 도메인 등록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1만3천여 업체.기관이 35만여건의 도메인을 등록했다. 한 업체나 기관이 평균 3개를 보유한 셈이다.

특히 정보제공전문 컨설팅 업체인 M사의 경우 무려 2천1백96개를 독식하는 등 1천개 이상의 도메인을 독점한 업체도 4곳이나 됐다. 50개 이상을 독차지한 업체도 4백37곳에 이른다.

또 올 1월 국제 도메인 등록기관인 미국 네트워크솔루션(NSI)의 닷컴(. com)도메인 집계 현황에서도 이를 가장 많이 등록한 나라는 미국에 이어 한국이 2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8위에 머물던 1998년과 비교할 때 도메인 장사를 통한 한탕주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현재 개인이나 단체는 NSI를 통해 닷컴 도메인을 무제한 보유할 수 있으나 '.kr' 에 대해서는 개인을 제외한 기업이나 단체만이 복수로 보유가 가능한 상태다.

정부는 그러나 다음달부터 '.kr' 에 대한 개인 복수등록제를 실시할 예정으로 도메인의 매점매석 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우려된다.

정통부 인터넷정책과 채향석(蔡香錫)계장은 "도메인 등록의 상한선을 두거나 복수 도메인을 등록할 경우 수수료를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도메인 독점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 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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