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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그의 사진이 예술인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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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진홍
논설위원

# 지난 수요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림미술관을 찾아가는 길엔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벌써 가을인가 싶었다. 하긴 입추와 말복이 모두 지났고 글피면 절기상 처서이니 그리 생각한 것이 착각만은 아니었으리라. 게다가 안개비가 옷 속까지 파고들어 온몸이 눅눅해진 상태에서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 절로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났다. 눅눅함에 동반된 약간의 불편함과 커피향의 절실함이 어우러진 상황이었기에 사진 전시를 보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것이 주명덕의 사진이라면…

 # 주.명.덕. 1940년생이니 일흔 나이도 지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 47년에 누이 손을 잡고 삼팔선을 넘었다. 6·25전쟁이 끝나던 해인 53년에 서울중학교에 들어가 그 시절부터 산을 좋아했고 산악사진작가를 만나는 인연도 닿았다. 대학 시절 맘에 둔 여대생과 친해지기 위해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했다. 3년 반쯤 지났을 무렵 겁도 없이 사진전을 열었다. 66년 4월 중앙공보원 화랑에서 펼친 ‘홀트씨 고아원’ 전시였다. 전쟁의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상처인 혼혈고아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었다. 3년 후 이것은 『섞여진 이름들』이란 사진집으로 세상에 나왔고 30년 후 복간됐다. 그리고 이번 대림미술관 전시에서는 디지털 액자에 걸려 다시 태어났다. 그는 이미 반세기 앞서 우리가 결코 피해갈 수 없던 다문화성(多文化性)을 담담히 렌즈에 담아냈던 것이다. 그는 미화하지도 극화하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찍었다. 그의 사진은 예술인 척하지 않아 진짜 예술이 됐다.

 # 사진은 세 번 태어난다. 찍을 때, 인화할 때, 그리고 누군가 그것을 볼 때! 찍는 행위는 과거에 속한 것 같지만 그 찍는 순간만큼은 항상 현재로 살아있다. 찍는 순간의 포착력이야말로 전시회에 내걸린 프린트이든 사진집의 화보이든 디지털 액자 안의 영상이든 관계없이 그 피사체가 새로 태어나게 만드는 숨은 힘이다. 그리고 누군가 다가와 그것과 마주하는 눈길이 있을 때마다 사진의 콘텐트는 다시 꿈틀거리며 깨어난다. 이것이야말로 사진의 진짜 위력이다. 주명덕의 사진엔 그 위력이 배어 있다.

 # 김환기의 그림이 이른바 ‘환기 블루’라는 말로 특징지을 수 있다면 주명덕의 사진은 ‘명덕 블랙’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그의 사진은 대체로 검다. 실제 풍광보다 훨씬 검다. 오대산·지리산을 막론하고 어떤 풍경은 너무 검어 형태는 물론 윤곽선 잡기도 쉽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그래서 더 들여다보게 만든다. 가만히 숨죽이고 들여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 나무며 풀이며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명덕 블랙’은 죽음의 색이 아니다. 꿈틀거리는 여명의 색이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하지만 그때가 생명의 시초요 깨어남의 시간 아닌가.

 # 주명덕의 이번 사진전 이름은 ‘My Motherland, 비록 아무것도 없을지라도’이다. ‘명덕 블랙’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싶지만 그 안에 생명이 꿈틀거리듯 그가 반세기 가깝게 발로 찍은 조국의 산하와 우리 삶의 뒤안길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대단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그의 사진에서 남루한 행색에 책보를 허리춤에 동여맨 70년대의 소년들은 어두운 구석 없이 그저 웃고 있었다. 사는 것이 팍팍해도 굴하지 않고 어렵고 힘들어도 힘든 줄조차 모르는 강인함이 거기 묻어 있었다. 그것은 결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강화도의 고인돌 사진으로부터 경주 양동의 덩그러니 비어 있는 한옥의 내부와 경주박물관 뒤편의 목 잘린 채 앉아 있는 불상들을 담은 사진에 이르기까지 그의 카메라가 담아낸 모습들은 언뜻 ‘부재와 상실’처럼 보인다. 하지만 부재 혹은 비움이 있기에 채움이 있고 상실이 있어야 회복이 있듯 주명덕의 사진은 과거에 닫히지 않고 미래로 열려 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사진의 진짜 매력이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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