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우씨, '축구부' 틀 깨고 개인지도

중앙일보

입력

"드리블은 왜 하는 거지.", "볼을 계속 갖고 있기 위해서요.", 열일곱개의 올망졸망한 입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그래 그럼 다시 해 보자." 진지한 분위기와 아이들의 쩌랑쩌렁한 함성 속에 오전훈련이 끝났다. 점심시간엔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다.

매주 일요일 서울 반포 주공3단지 원촌초등학교에서 '정우축구아카데미' 를 여는 한정우(30)씨. 그는 코치 2명과 함께 주중에는 각지에 흩어져 있는 초등학교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순회지도를 한다.

일요일은 이들 17명이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이다. 한씨는 '축구부'로 통칭되는 학원스포츠의 틈새에서 '대안 축구교실' 이라는 씨를 뿌리고 있다.

부상으로 짧은 선수생활을 마감한 한씨가 꿈나무 육성의 희망을 안고 부임한 초등학교 '축구부' 엔 어두운 구석이 너무 많았다. 성적의 노예가 된 지도자들은 아이들을 사정없이 몰아쳤고 구타.욕설이 넘쳐났다.

학부모로부터 월 30만원 이상씩 거둬 유지하는 합숙훈련에서 아이들은 왜 하는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공을 찼다.

축구가 전혀 적성에 맞지않는 아이도 몇년째 남아있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학교를 나온 한씨는 지난해부터 소질있는 아이를 찾아내고 그 선수의 학교를 찾아가 방과 후 개인지도를 했다.

일일 지도안에 맞춰 가르치고 월별 평가서를 보내는 등 정성을 기울이자 곧바로 소문이 퍼졌다.

올해 두 명의 제자가 서울시내 중학교로 스카우트됐고 아이의 손을 잡고 찾아오는 학부모도 생겼다.

한씨는 "휴일도 없고 때론 내 주머니돈을 털어야 하는 일이지만 아이들이 즐겁게 축구를 배우고 튼튼한 기본기를 익혀나가는 걸 보는 게 큰 보람" 이라며 웃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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