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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교에서 본 예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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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전적으로 독보적이며 유일무이한 존재다. 그가 만약 소크라테스 같은 현자(賢者)
나 마호메트 같은 선지자, 혹은 부처처럼 깨달음을 얻은 자에 불과했다면 지금의 그와는 달랐을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으로 선출되면서부터 마음 속에 한가지 소원이 있었다. 예수가 걸었던 길을 걷고, 그가 가르침을 베풀었던 곳에서 강론하고,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당하고 묻힌 곳에서 기도하는 것이었다. 지난주 교황은 드디어 그 소원을 풀게 됐다. 몸은 비록 지쳤지만 기쁨에 찬 마음으로 오랫동안 고대하던 성지순례를 떠난 것이다.

교황으로서는 개인적인 ‘하느님과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가장 신성한 성지에서 기도에 몰입해 홀로 묵상할 때는 TV 카메라의 접근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가슴 속으로 열망해온 그 땅은 유대교와 회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황은 유대교 제1의 성지인 통곡의 벽과 템플山 정상에 있는 엘 아크사 회교사원도 방문했다. 그는 또 회교와 유대교의 지도자들도 만났으며 유대인 대학살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야드 바셈 기념관에도 들러 기도했다.

지난 3월 12일 교황이 가톨릭 교회의 오류와 과오에 대해 사죄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성지순례 역시 종교적 화해의 의식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임중 90회 이상 지난날 교회가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가톨릭 교회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죄에 대해 개신교도와 정교회뿐 아니라 회교도와 유대교도에게도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그의 그런 노력은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했다. 교황은 이제 가톨릭 교회의 성년(聖年)
을 맞아 기독교·유대교·회교 등 3개의 유일신교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해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을 찾은 것이다.

이들 세 종교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성전(聖典)
을 통해 그의 뜻을 계시하고 있는 유일신을 믿는다. 그들은 또 神의 정의와 힘이 승리하는 최후의 시간이 올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버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들 세 종교에는 곧잘 간과되곤 하는 또 하나의 공통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나사렛 예수다.

기독교도들에게 예수는 하느님의 독생자로 유일무이한 존재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예수를 가리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회교도들은 마호메트 이후 예수를 선지자이자 알라의 메신저로 간주해왔다. 또 수세기 동안 예수에 대해 침묵을 지켜온 유대교도 가운데 다수는 이제 그를 유대교의 스승이자 개혁자로 인식하고 있다.

예수는 아시아 여러 종교 신봉자들에게도 친숙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됐다. 많은 현대 힌두교도들 사이에 예수는 자기실현적 성인(聖人)
으로 존경받고 있다. 또 최근에 와서 달라이 라마 같은 불교도들은 예수를 부처처럼 큰 자비(慈悲)
를 지닌 인물로 인정하고 있다. 개신교 신학자 존 코브는 “세계가 갈수록 좁아짐에 따라 예수의 위상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세계 주요 종교 간의 깊은 이해를 촉구한 시점에 기독교 이외의 종교들이 예수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유대교

예수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은 성서의 복음서를 보면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유대인 선지자로 기적을 행한 예수의 모습은 서기 1세기가 끝나기 전 인류의 보편적인 하느님이자 구세주로서의 그에 대한 믿음이 확산되면서 가려졌다.

서구의 역사에서 예수는 그리스인·로마인·네덜란드인, 그리고 1930년대 독일에서는 덩치 큰 금발의 아리안인(나치가 만들어낸 反유대적 이미지)
으로까지 묘사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 역사에서 예수는 독실한 유대교도라면 그 이름을 입에 올려서는 안될 배교자(背敎者)
로 묘사돼 왔다.

성서 외에는 예수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자료가 부족한 탓에 예수는 초대 교회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비평가들도 있다. 실제로 유대교 경전인 탈무드에는 예수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짧은 구절들이 있었지만 나중에 삭제됐다.

초기 문서 가운데 유일하게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은 1세기 유대 역사학자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쓴 짧은 구절이다. 요세푸스는 예수에 대해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된 후 기독교도라고 불리는 신봉자들을 끌어모은 ‘현자’·‘경이로운 일을 행한 사람’·‘스승’이라고 설명했다.

중세에는 기독교도들의 유대교도 박해 때문에 예수에 대한 두 종교 사이의 대화가 불가능했다. 유대교도들은 기독교의 예수像과 그림을 토라(모세 5經으로 유대교 율법)
에서 금지하는 우상숭배의 상징으로 보았다. 일부 유대교도들은 복음의 이야기를 패러디로 엮은 ‘예수의 역사’(Toledoth Yeshu)
를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서 예수는 유혹에 넘어간 마리아의 사생아로 후에 신비한 힘을 얻어 마술을 행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결국 그는 교수형을 당하고 그의 시신은 3일만에 발견된다.

18세기 들어 성서의 내용에 회의를 품은 학자들이 복음서의 설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역사 속의 예수’를 찾는 작업을 시작했을 때 유대인 지식층 대다수는 동참하기를 꺼렸다. 그러나 ‘개혁 유대교 운동’을 주창한 독일인 랍비 아브라함 가이거는 과감히 그 일에 나섰다.

그는 진보적인 개신교 지식인들이 기독교 교리가 주장하는 초자연적인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초월해 복음 문헌 뒤에 감춰진 깨달음을 얻은 도덕적 스승의 이미지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았다. 가이거는 독자적인 연구 끝에 예수가 믿고 가르쳤던 것은 사실상 서기 1세기 유대교의 주요 종파였던 진보적 바리새派의 유대신앙이었다고 결론내렸다.

미국 다트머스大의 유대학 교수 수잔나 헤셸은 “가이거는 예수가 개혁주의적인 바리새派였으며, 그의 가르침이 추종자들에 의해 이교도적인 요소와 혼합돼 기독교의 교리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가이거가 말하는 예수는 진보적인 개신교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독창적인 종교의 주창자라기보다는 자신이 물려받은 전통을 민주화한 인물이다.

가이거는 최초의 기독교도들은 바리새派와 적대적이던 사두개派였다고 주장했다. 성서에서 바리새인들을 형식주의적인 위선자로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은 바로 그들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이거와 그 이후의 유대 학자들은 ‘예수의 신앙’은 진보적인 유대교로, ‘예수를 믿는 신앙’은 기독교로 구분했다.

‘유대인인 예수’의 그런 이미지는 곧 종교 논쟁에 동원됐다. 유대인들은 행여 예수라는 인물에 매료된다 해도 기독교로 개종할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는 활발한 개혁 유대교 운동에서 충실히 재현된 그의 진정한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면 기독교도들은 더 이상 예수를 새롭고도 보편적인 종교의 창시자라 주장할 수 없게 됐다. 정말로 보편성을 주장할 수 있는 종교가 있다면 그건 기독교와 회교의 조상으로 유일신을 경배하는 유대교였다.

홀로코스트는 예수를 다른 방식으로 형상화하는 데 일조했다. 일부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 참상의 책임을 기독교도나 神에게 돌릴 때 몇몇 유대인 예술가들은 이 대학살극의 공포에 다르게 대처하는 법을 발견했다. 그들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라는 주제를 나치에 희생당한 유대인에게 대입했다. 그런 경향은 특히 유대인 표시가 찍힌 채 죽어가는 예수를 그린 마르크 샤갈의 섬뜩한 그림들에서 뚜렷이 보인다.

엘리 위젤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겪은 무시무시한 경험을 그린 자전적 작품 ‘밤’에서 골고다 언덕의 예수와 두 명의 강도처럼 나무에 목매달린 3명의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의 모티프를 적용했다. 그 중 가운데 매달린 순진한 소년은 몸이 너무 가벼운 나머지 올가미가 천천히 죄어들어 그만큼 오래 고통받는다.

동료 죄수가 “神은 어디 있느냐”고 울부짖을 때 작가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는 여기 있다. 여기, 이 교수대에 매달려 있다.” 바나드大와 컬럼비아大의 유대학 교수 앨런 시걸은 “유대교 사상에는 고난의 개념이 풍부하다”면서 “유대인들이 기독교 사상의 핵심적 이미지를 집어내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오늘날 학자들은 예수의 유대적 측면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그의 가르침 대부분이 유대교 경전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성경을 공부하는 유대학 전공 학생들뿐 아니라 기독교도들 사이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히브리 유니언 같은 몇몇 유대교 신학교에서는 신약 성서가 랍비 지망생들의 필수 과정이다.

회교

지난해 라마단이 시작됐을 때 바티칸에서는 ‘인류의 이상이자 영원한 메시지’로 예수를 상기하자는 의미에서 전세계 회교도들에게 축하인사를 보냈다. 그러나 회교도들에게 인류의 완벽한 이상은 선지자 마호메트로, 그들이 ‘인간에 깃들인 신의 말’로 믿는 코란도 그를 완벽한 이상형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로 보며 ‘이사 이븐 마리암’(Isa ibn Maryam)
, 즉 코란에 그 이름이 언급된 유일한 여성인 마리아의 아들로서 공경한다. 많은 기독교도들이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것을 인정하지 않지만 회교도들은 코란에 기록된 처녀 수태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조지 워싱턴大의 이슬람학 교수 세이예드 호세인 나스르는 “많은 서구인들이 예수의 승천도 믿지 않지만 회교도들은 믿는다”고 말했다.

예수에 관한 회교도들의 믿음은 신약 성서(그들이 보기에 신약은 인간의 오류에 의해 오염됐다)
가 아닌 코란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또한 ‘하디스’라 불리는 마호메트의 언행록과 전문가들의 주석에 의지한다.

그런 자료들에 의하면 예수는 神의 섭리로 야자수 나무 아래에서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난다. 비록 神의 아들은 아니지만, 아기 예수는 요람에서 자신이 神의 예지자라 선언한다. 알라는 자손을 갖는 것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회교의 예수는 마호메트를 비롯한 다른 선지자들에겐 없는 독특한 권능을 누렸다. 오직 예수와 그의 어머니만이 사탄의 영향을 받지 않고 태어났다. 심지어 마호메트조차 선지자가 되기 전 천사의 손에 의해 정화돼야 했다. 또 코란을 보면 마호메트는 기적을 행하는 자가 아닌데 반해 예수는 기적적으로 맹인의 눈을 뜨게 하고 문둥병자를 치료하며 알라의 허락을 받아 죽은 자를 일으킨다.

그런 식으로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낸다. 회교도들은 알라를 제외한 어느 대상에게도 기도를 올릴 수 없다. 그러나 대중적인 기도 중에 예수나 그 어머니 마리아 또는 세례 요한에게 축복을 비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호메트가 가장 위대한 선지자이자 최후의 선지자로서 예수를 능가한다 해도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코란에서 예수는 죽지 않으며 부활하지도 않는다. 회교도들은 신약 복음서의 기록대로 예수가 神에게 십자가의 고난을 면하게 해달라고 간구했고 神은 그를 하늘나라로 데려가는 것으로 기도에 응답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또한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면 敵그리스도를 멸하고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예수께서 지상에 강림할 것이라고 믿는다.

▶힌두교

복음서에는 예수의 일생중 소년시절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의 성전을 방문한 때부터 세상 구원에 나선 30세까지의 행적이 빠져 있다. 그러나 인도에는 부모 곁을 떠난 10대의 예수가 동남 아시아 곳곳을 유랑하며 요가 명상법을 배웠고 돌아가서는 유대인의 힌두교 성직자가 됐다는 전설이 뚜렷이 남아 있다. 남들이 숭배하는 성인을 자신들 것으로 소화해낸 힌두교의 유연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힌두교도들은 인도를 성스러운 땅으로 믿었고 그 신성한 산하 곳곳에 30만의 토착신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가 자신의 근원적 신성을 규명하는 비결을 인도에 와서 배웠다는 것도 그 맥락에서 가능하다.

간디를 비롯한 많은 힌두교도들이 예수에 매료된 것은 예수의 자비로움과 비폭력성이 바로 자신들의 경전에서 가르치는 미덕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유일신의 개념이 필요 이상의 속박을 전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인간은 神의 자녀이며 스스로 神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 복음서를 읽은 힌두교도들은 예수가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천명한 요한복음의 구절에 깊이 감화된다. 그 구절은 누구나 엄격한 정신 수행을 통해 보편적인 ‘神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힌두교의 기본교리와 상통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위대한 힌두교 성인 라마크리슈나는 아기를 안은 성모 마리아의 그림을 놓고 명상하던 중 ‘사마디’의 경지, 즉 세계가 신성으로 충만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기록했다. 어느 신을 대상으로 하든지 그런 정신적 체험은 가능하다. 인도인 디파크 초프라는 “그리스도나 하느님이나, 크리슈나나 부처나 그들의 깨달음은 궁극적으로 동일하다”며, “‘네 이웃을 사랑하라’ 보다는 ‘당신과 나는 하나’라는 인식이 바로 그 깨달음의 경지”라고 말했다.

▶불교

예수와 부처의 일대기는 놀랄 만큼 유사하다. 우선 순결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점이 같다. 또 집을 떠나 악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광야로 향했다는 것도 그렇다. 둘 다 깨달음을 얻고 돌아와 기적을 행했고 가르침을 통해 기존 종교에 도전했다. 신도들이 저절로 모여들었고 그 중 한 사람에 의해 배신을 당했다는 점도 같다. 자비ㆍ이타ㆍ박애의 정신을 설파했고 자신의 이름이 붙은 종교를 창시했다는 것도 동일하다.

베트남 선불교 승려 티치 나트 한은 예수와 부처는 ‘보편적 사랑’이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지고의 가치임을 깨우쳐준 ‘형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적어도 한가지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 기독교도들이 결코 그리스도가 될 수 없는 반면 모든 불교도들은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불교도가 기독교를 접하면 예수의 인성(人性)
을 무시하고 부처와 유사한 존재로 변형시켜 버린다. 티베트 불교도들에게 예수는 완벽한 깨달음의 존재로서 타인에게도 그 경지로의 인도를 약속하는 보살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예수를 불교도로 바꿔 놓는 것은 예수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것이다. 우주의 창조자이자 부양자인 하느님에 대한 예수의 믿음은 전혀 불교적이지 않다. 또 예수가 말한 죄 역시 불교적 개념이 아니다. 예수는 업보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자비를 베풀라고 설교하지 않았을 뿐더러 생을 죽음과 환생의 윤회로 보지 않았다.

달라이 라마는 예수를 부처의 틀에 끼워맞추는 것을 “양의 몸에 들소의 머리를 얹어놓는 것”에 비유했다. 한편 예수와 부처가 어떻게 죽었는가는 둘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부처는 마치 불꽃이 스러지듯 고요히 열반(涅槃)
에 들었다. 한편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던 예수는 자신을 버린 하느님의 뜻에 순종해 죽음을 맞았다.

십자가야말로 기독교의 그리스도를 다른 종교의 예수와 명확히 구분짓는다. 유대교에서 메시아는 결코 죽지 않으며 더군다나 범죄자로 처형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회교에서 예수의 죽음은 알라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돼 철저히 거부된다.

힌두교의 경우 죽음의 나락에서 벗어난 수행자로서의 예수만을 받아들인다. 승려 티치 나트 한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환희와 평화가 아닌 고통의 이미지”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다른 종교들은 죽음이라는 실존적 고통을 겪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없고, 따라서 예수를 아버지에 의해 부활한 하느님의 아들로 숭배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예수를 유대교ㆍ회교ㆍ힌두교ㆍ불교의 거울에 비춰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히 있다. 바로 자비로운 예수의 이미지가 보편적인 호소력을 갖는다는 것과 대다수 세계인들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가 세계 종교들 간에 화합의 가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발상은 그럴 듯하지만 궁극적으로 실현 불가능할 듯하다. 기독교도조차 완전히 규명하지 못한 예수라는 인물은 언제나처럼 모순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회교
회교도들은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로 인정하며 그를 ‘마리아의 아들 예수’로서 경배한다. 마리아는 코란에 이름이 언급된 유일한 여성이다. 왼쪽의 그림은 17세기 페르시아의 필사본으로 기적을 행하는 예수를 그리고 있다.

▶유대교
기독교와 유대교 학자들은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많은 부분을 유대교 성전(聖典)
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유대교도들은 여전히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한 사람의 ‘훌륭한 유대인’으로 본다.

유대인 예수 : 서기 1세기 말께 예수가 인류의 보편적인 하느님이자 구세주로 자리잡으면서 유대인 선지자이자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초기의 그의 정체는 가려졌다. 그러나 최근 샤갈(왼쪽)
·로이벤 루빈(아래)
등 유대인 화가들은 그리스도 생애의 장면들을 재해석했다.

사랑이 넘치는 인간 : 불교도들은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았던 예수의 인성(人性)
을 무시하고 부처와 비슷한 존재로 탈바꿈시켰다. 일부 불교도는 그를 보살로 간주한다.

부처의 형제 : 부처와 예수는 둘 다 순결한 여인에게서 태어났고 기성 종교에 도전했다. 왼쪽 그림에서 예수는 불교 승려로, 위에서는 영혼의 원천으로 그려졌다. [뉴스위크=Kenneth L. Woodward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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