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삼성과 애플, 공포의 균형이 특효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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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애플이 삼성전자 ‘갤럭시탭 10.1’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소송에서 독일 뒤셀도르프 지방법원이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아들였다. 삼성전자는 한 달여간 유럽 지역에서 이 제품을 판매하기 어렵게 돼 허를 찔렸다. 하지만 뒤셀도르프 법원은 유럽 특허 소송의 절반 이상이 몰릴 만큼 세계 어디보다 특허권자에게 우호적인 곳이며, 이번 가처분은 임시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곧 나올 네덜란드 법원의 가처분 심판과 뒤셀도르프 법원의 본소송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만약 애플이 지면 가처분 기간 동안 삼성이 판매금지로 본 피해를 모두 보상해줘야 한다.

 현재 삼성전자와 애플은 세계 8개 나라에서 20여 건의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을 선점한 애플이 안드로이드 진영에 본격 견제구(牽制球)를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애플은 주로 디자인과 외관을 문제 삼은 반면 삼성은 데이터 분할전송, 전력 제어, 전송 효율 같은 자사의 무선 통신 특허를 침해했다는 입장이다. 이번 분쟁이 사상 최대의 로열티로 이어질지, 아니면 서로 특허권을 인정하는 ‘크로스 라이선싱’으로 낙착될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최근 애플은 노키아가 제기한 무선통신 특허소송에서 뼈아프게 패소당한 적이 있다. 반대로 미국과 유럽 법원이 디자인과 비즈니스 모델의 특허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여서 삼성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 특허소송과 무역마찰이 빈발(頻發)하기 마련이다. 우리 기업들도 세계 시장의 주전으로 우뚝 선 만큼 외풍이 한층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예전처럼 소극적인 대응은 곤란하다. 과거의 특허 전쟁을 살펴보면 가장 효과적인 처방전은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었다. 함부로 덤벼들다 자신도 치명상을 입을 위험이 있으면 누구도 섣부른 도발을 망설이게 된다. 공포의 균형을 맞추려면 사전에 방대한 특허망을 촘촘하게 쌓는 게 중요하다. 삼성전자도 애플이 경계가 모호한 디자인 쪽을 공격해온 만큼, 확실한 기술을 앞세운 특허 침해 소송으로 적극 맞대응해야 원만한 해결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